저자 : 전쟁사부 선임연구원 조성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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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일본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미군의 보급기지로서뿐만 아니라, 해군과 선원들이 미군 수송과 항로를 안내한 것 외에도 유엔군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연안에 부설해 놓은 북한의 지뢰 제거에 참여했다. c미 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이 “일본에서의 보급, 장비 수리, 해상지원 등이 없었더라면 미국은 6·25전쟁을 3개월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던 것처럼 일본의 역할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c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기여에 감사만을 할 수 없다. 그 이유를 일본인은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c우선 일본의 식민지 경험에 대한 상처다. 35년간의 억압과 수탈 이외에도 징병, 징용 등으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경우와 심지어 군대위안부로 동원된 역사적 아픔을 잊을 수 없다. c더욱이 이러한 식민지 유산이 분단으로 이어진 데에 대한 책임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 미국과 태평양전쟁의 종전 협상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확보하고자 했던 목표는 천황제의 유지와 함께 한국과 대만의 고수였다. c일본이 패망하던 8월 15일 일본 중국파견군의 오카무라 야스지 총사령관이 육군부에 보낸 최후 호소 전보문에서 “일본의 영토를 본토로만 국한한다면 일본의 인구가 3000만명이었을 때로 되돌아가라는 것”이라며 “지금은 인구가 7000만명이니 반드시 조선과 대만을 소유해야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고 말한 바와 같이 일본에는 그만큼 한반도가 긴요하여 항복을 지연시켰다. c결국 그들의 요구는 좌절되고 말았지만 전후에도 한반도가 그들의 이익선, 생명선이라는 의식이 계속 남아 있어 침략을 미화하는 역사왜곡이 나타난 것에 대해 한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c그리고 전후 경제난에 허덕이던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유엔군의 보급기지로서 4년간 24억달러에 이르는 미군의 장비와 보급에 대한 조달로 이 시기의 무역적자를 메우고도 남았다. c미국 시장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도요타자동차가 제2차 세계대전 후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장난 전차와 트럭을 신속하게 수리하여 전쟁터에 보낸 6·25전쟁이 계기가 되었다. c또한 미군이 중국군과 대적하면서 혹한으로 기관총 작동이 안되었을 때 이를 추위 속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였던 것도 일본기업이었다. c이러한 6·25전쟁의 특수로 일본은 전후 재건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의 최대 비극이었던 6·25전쟁이 일본의 생명선이 된 결과와 같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회의다. 1993년 당시 미야자와 일본 총리는 초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이 적어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역할을 맡겠다는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c일본은 소위 평화헌법으로 군국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다소 억제되고 있었으나, 1970년대 초 미국의 아시아 안보에 대한 공약이 약해지자 일본의 독립적인 군사적 지위의 획득론이 등장하여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c그러나 경제대국에 걸맞은 동북아 지역이나 세계적인 안보역할의 확대론이나 군사대국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 주변국들은 긴장과 의심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이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c그러나 일본인들은 과거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아시아침략 전쟁 중 일본군이 우리나라나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저지른 잔혹행위에 대한 죄의식이나 부끄러움을 느끼기는커녕 어쩔 수 없이 전쟁으로 끌려갔다는 인식이 강하다. c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0여년이 지난 지금 군국주의를 경험한 전쟁세대가 줄어들고 일본사회의 중추세력이 전후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의식이 계속되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c최근 일본국민의 지지를 크게 받고 있는 59세의 고이즈미 총리는 오는 8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는 등 일본의 보수화와 우경화를 지지하는 다른 지도자와 차이가 없다. c따라서 6·25전쟁에서의 일본역할이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일본이 한국의 우방인가''라는 우리의 회의에 대하여 일본정부는 답변해야 할 것이다. c이를 위해서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 지식인들이 `일본의 모습을 그르치는 역사교과서에 반대하는 성명''이라는 호소문에서 “과거를 은폐하고 전면적으로 미화한 역사상을 갖고 차세대 국민을 교육하는 것은 아시아와 세계에서, 다른 나라 국민들과 평화적으로, 인간적으로 이해와 협력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는 것”이라는 비판을 수용하는 데서 그 출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