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은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후 한국군은 1993년 소말리아로부터 현재 레바논 동명부대에 이르기까지 국제평화유지활동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특히 동명부대는 7월 19일로 파견 4주년을 맞이했고, 레바논 평화유지군 소속 30여 개 나라에서 군사작전과 민사작전에서 가장 으뜸으로 손꼽힐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2007년 여름, 동명부대는 지중해 연안 레바논 남부지역의 평화정착을 위해 장도에 올랐다.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핏빛으로 얼룩졌던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선인 `블루라인(blue line)'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으며 레바논 남부 완충지대 경계선인 리타니(litani) 강의 황토색 물 또한 맑은 희망의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 대륙세력의 이동로, 레바논
레바논을 이해하면 중동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은 레바논 상황의 복잡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엉킨 실타래처럼 이해하기도 풀기도 어렵다. 레바논은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내부의 정ㆍ종파(政ㆍ宗派)로 조각조각 분열돼 갈등으로 점철돼 왔다. 얽힌 실타래의 한 가닥을 따라가 보면 고대 그리스ㆍ로마로부터 중세의 십자군전쟁, 네 차례 중동전쟁으로 연결된다. 레바논은 늘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한반도가 대륙과 해양세력의 교차로였다면, 레바논은 유럽 대륙세력이 중동으로 진출하는 관문이자 이동로였다. 그리고 다른 한 가닥은 이스라엘 건국 이후 밀려난 40여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피난처로 이어져 있다. 이로 인해 레바논 정세는 더욱 혼미(昏迷)했다.
주변 시리아ㆍ이스라엘ㆍ터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형성된 다양한 민족과 종교, 정치적 갈등은 늘 내전과 전쟁으로 비화(飛火)됐다. 급기야 1975년과 1976년에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레바논에서 치열한 살육전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슬람교(60%)와 기독교(36%) 등 17개 정파의 대립으로 내전이 일어났고 중동의 파리 베이루트는 황폐화됐다. 1982년에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게릴라 소탕을 명분으로 레바논을 침공했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평화유지군은 1983년 241명의 사상자를 내고 철수했고, 레바논의 비극은 멈출 줄을 몰랐다.
▶ 두려움과 희망 사이 촉매제, 동명부대의 전개
2006년 7월,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는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군 2명을 생포하고 8명을 사살했다. 이는 곧 이스라엘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됐고 즉각적인 응징이 뒤따랐다. 헤즈볼라 로켓공격은 이스라엘 하이파를, 이스라엘 기갑 및 공중공격은 레바논 티레와 베이루트 일대에 많은 희생자를 발생했다.
유엔은 3만 명의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 United Nations interim Forces in Lebanon)을 파견해 국경선으로부터 리타니 강을 연해 폭 40×64㎞의 완충지대를 설정했다. 이러한 가운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취임하면서 한국군의 국제평화유지활동 참여의 폭 확대가 요구됨에 따라 동명부대가 파견됐다. 동명부대 창설준비단은 세계 각 지역에서 유엔평화유지활동과 이라크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구비한 지휘관과 참모요원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동티모르에 파견됐던 제9공수특전여단 제52대대를 모체부대로 선정했다. 이런 요인은 UNIFIL 파견국 중 가장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여건이 됐다. ‘동명(東明)’은 ‘레바논의 동쪽에서 온 밝은 빛’을 뜻한다. 350여 명은 그들에게 평화와 희망의 빛을 가져온 이웃으로 받아들여졌다.
군사작전은 완충지대에서 가장 민감한 리타니 강 검문소와 고속도로(ES도로)에서 무장 세력과 불법 무기의 유입을 24시간 감시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레바논군과 연합 도보 정찰, 검문소 시설 보강과 각종 장비지원 등 긴밀한 작전 협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UNIFIL 주관 각종 사격대회ㆍ마라톤 경기 등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평화조성자’이자 ‘강한 전사(戰士)’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 평화의 하얀 손으로 상처를 어루만지다
남부지역 안정은 UNIFIL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하에서 이뤄진 동명부대의 전개는 그들에게 신이 건네 준 하얀 손이었다. ‘하얀 손’은 레바논에서 가난하고 핍박받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현지 주민들이 평화유지군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따가웠다. 오랜 역사 속에서 외국군의 레바논에 대한 침략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명부대는 의료지원과 태권도 교실을 시작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형제로 다가갔다. 마을과 마을의 끊기고 울퉁불퉁한 도로를 연결 포장하고, 노후화된 학교시설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제공과 환경개선·최첨단 교육시설(e-learning) 시스템을 제공했다. 현대식 운동시설을 갖춘 압바시아 동명체육관 등 각 마을의 태권도교실은 런던올림픽 메달 꿈나무들의 산실이기도 하다. 취약계층 여성들을 위한 재봉교실은 생계도움과 여가선용의 기회로 활용됐다. 한글 교실 수료자는 370명을 넘어섰고, 태권도 유단자 56명을 양성했다.
현재까지 183개 주민숙원사업을 통해 5만여 명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압바시야를 비롯한 5개 마을은 레바논 미래 꿈의 도시로 탈바꿈되고 있다. 지역 내 관공서와 학교 등 공공시설 개선과 함께,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지원했다. 이 같은 성과로 인해 UNIFIL 사령관의 추가병력 파견 요청과 인접 마을 주민들의 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 평화의 야자수에 열매가 맺히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졌음에도 계속된 전쟁으로 인한 레바논의 불행은 동명부대에 의해 서서히 희망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들은 중동지역에서 영어와 불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사회의 다양성은 장점으로 부각되는 법이다. 또한 유럽과 중동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입지를 바탕으로 무한한 성장 잠재력도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1960년대 초반만 해도 자신들보다 오히려 못살았던 우리나라가 어떻게 전쟁의 폐허 속에서 급속도로 세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는지 현지에서 다양한 프로젝터를 통해 전수하고 있다. 그리고 군부 주요 인사와 행정기관·언론 등 각계각층 리더들은 연 2회 한국을 방문해 직접 그 경험을 체득하고 있다. 한국의 분단된 안보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기도 했다. 그들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지난 8월 초, 한국을 방문했던 한 가수에 의해 잠실벌 야구장에서 우리말로 애국가를 부른 것으로 상징된다.
우리의 경험은 레바논 다음 세대들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동명부대에 의해 비춰지는 희망의 빛은 레바논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전쟁의 포탄이 작렬하던 그 자리에 심은 두 그루의 야자수는 이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다. 그들과 우리에게 뜨거운 형제애의 표상이요, 레바논의 상징인 백향목(柏香木·cedar)과 함께 울창한 숲을 이룰 것이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해외파병사 연구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