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전투기로 위장해 청천강~압록강 지역만 출격…]
[美전투기와 공중전 벌이며 아군이 장악한 제공권 흔들어 지상공격은 안해]
중공 지상군이 한반도에 진입할 무렵, 전쟁의 또 다른 변수로 등장한 것은 소련 전투기의 출현이다. 소련 전투기들은 중공 국적표지를, 그리고 조종사들은 중공 공군복을 입는 등 중공전투기로 위장했다.
1950년 11월 1일 중공 선양과 안산 비행장에서 이륙한 소련 공군 제151비행사단 소속 MIG-15기 16대가 미 공군 T-6 전술통제기와 F-51 전투기를 공격했다. 또 11월 8일에는 안둥(현재 단둥)기지에서 발진한 MIG-15기와 미군 F-80전투기 간 공중전이 벌어졌다. 이때 미 브라운 중위가 MIG-15 1대를 격추시켰는데 이는 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제트 전투기 간 공중전이자 미군이 제트기 간 교전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이기도 했다. 이후 정전 때까지 소련은 14개 전투비행사단 2만6000명의 병력을 중공에 주둔시켰고, 총 6만3229회 출격해 1790여회의 공중전을 벌였다.
소련 공군의 등장으로 전쟁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다. 한국전 발발 이틀 후인 1950년 6월 27일 지상군보다 먼저 참전한 미 공군은 7월 이후 한반도 전역에 대한 완전한 제공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뛰어난 성능과 무장을 갖춘 최신예 MIG-15 전투기 참전에 따라 유엔 공군은 이 전투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유엔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80과 F-51은 적 MIG-15 전투기를 만나면 공중전을 회피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아무런 방해 없이 적진을 초토화했던 B-29와 B-26폭격기는 전투기 엄호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국군과 유엔 지상군은 이전과는 달리 적 공습에 직접 노출되기도 했다. 결국 소련공군의 참전은 1950년 11~12월의 아군 후퇴를 가속화시키는 한 요인이 되었다.
소련공군의 역할은 한반도 진입 초기 단계에서 중공군을 유엔군 전투기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군과 유엔군 지상군을 공격하거나 한반도 중부 이남까지 진출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주로 청천강 이북~압록강 이남지역인 소위 '미그회랑'에서 유엔 전투기와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고 방공요격 임무에 치중했다. 당시 미국은 소련공군의 철저한 위장으로 인해 중공 공군으로 인식했고 이러한 인식은 이후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이근석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