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입 : 국궁의 군사문화적 전통
c근대 이전에 활은 군사상 중요한 무기였고 활쏘기는 병사들에게는 말할
것 없고 군자들의 심신을 수련하는 데도 필수적인 기예로 간주되었다. 중국의 고대경전인『주례·대사도(周禮·大司徒)』에는
문무겸전을 지향한 교육관을 제시하며 ''육예(六藝)''를 기본 교육으로 삼고 있다. 육예란, 군자가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의
자질로서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을 말한다. 이처럼 활쏘기는 일찍이 동양사회에서 군사적인
수단을 넘어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적인 수단으로서도 중시되었던 것이다.
c우리 민족은 동이족(東夷族)이라 불리웠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상 활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고조선은 우리에게 귀중한 활문화의 시원적인 유산을 남겨주었다. 지금의 전국체육대회격인
국중대회(國中大會)에서는, 한맹(寒孟)·수박(手博)·검술(劍術)·궁술(弓術)·격구(擊球)·금환(金丸)·주마(走馬)와 같은
경기가 열려 서로 우열을 겨루었다. 이들 중에 궁술은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종목이 되었다. 고조선에서는 단궁(檀弓)이라고
하는 양질의 활을 제작하는 한편 유사시를 대비하여 평상시 그렇게 대회를 통해 집단적인 결속을 다졌던 것으로 보인다.
c삼국시대에 들어와서 활은 본격적으로 여러 가지 목적에서 활용되었다.
국가는 백성들에게 활쏘기를 장려했고 나라의 인재를 등용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군자의 최고 자질로는 선사(善射)와
강용(剛勇)을 겸비하는 것이 손꼽히게 되었다. 고구려의 경당과 같은 교육기관에서는 독서와 함께 ''습사(習射)''가 정규교과목으로
편성되었는가 하면 국가적으로 활쏘기대회가 열려 대대적인 관심 속에서 대회가 치러졌다. 신라에서 구진천(仇珍川) 같은 명뇌사(名弩師)가
나왔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c삼국시대에는 활의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사회 전반에 걸친 파급효과로
이른바 ''궁시문화(弓矢文化)''가 형성되었다.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시작된 궁시문화는 삼국 전역에 미쳤고, 각국은 활과 화살을
국내의 필요는 물론이고 국가간의 선린을 도모하는 선물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점차로 기사(騎射)를 중시하게 되어 경기나
오락으로서도 그 면모를 다듬어 갔다. 알고있는 바와 같이, 장궁과 단궁으로 제작된 당시의 궁은 수성전과 기마전에 적합한
전술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궁시문화의 바탕 위에서 지형상 산악이 발달한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는 전쟁의 주요한 방어작전으로 줄곧 수성전(守城戰)을
운용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적인 장기인 기마병(騎馬兵)을 상대로 하여 주로 그들이 취약한 산악전으로 맞섰다. 수성전은
바로 산악전에 부합하는 전쟁 양상이었다. 수성전에서는 산을 잘 타는 우리의 과하마(果下馬)와 주무기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쏘는
활의 위력이 대단한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c그러나 화기의 출현으로 인해 궁시의 위치는 흔들리게 되었다. 임진왜란은
화기와 궁시가 자리를 바꾸게 된 분수령이었다. 종래 선비의 심신 수련의 숭상되었던 전통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궁시의 제조술과
궁술의 명성도 그래도 유지되었지만 이제 조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부대편성의 병종에 있어서도 궁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달라져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c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기에 비해 파괴력이 약한 궁시는 생산과 무장
및 사용의 편의성으로 인해 화기와 상보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에서 계속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 전술적 차원에서 궁시의
발사법이 다양하게 추구된 것(迭射法·近射法·節射法·騎射法)도 그러한 까닭에서 연유했다고 하겠다. 게다가 시재(試才)의
하나로서 활쏘기는 현실적인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국왕인 효종이나 정조는 활쏘기에 대한 관심이 커서 신식무기와의
결합적인 운용은 물론이고 ''왕조의 가법(家法)''으로 그 가치를 중시하였다. 비록 화기의 출현으로 전술적 가치가 약화되었지만
활쏘기는 여전히 덕과 예양을 함양하는 수단으로서 그리고 국가질서의 유지와 인재등용의 방편으로서 그 기능을 담당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사장(射場)에서 행해진 향사(鄕射)는 시대가 변하면서 활쏘기가 사회문화적인 기능에 더
비중을 두고 존속해갔음을 잘 말해준다.
c이렇듯 전통적으로 전시에 군사적인 무기로 운용된 활은, 평시에 개인적인
심신수련과 국가적인 사회통합의 중요한 수단으로 주목되었다. 임란을 겪으면서 군사적으로 전력의 위력면에서 그 자리를 내주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오히려 국민들의 상무정신(尙武精神)을 북돋우는 기재로 활은 널리 보급되었다. 무과에도 반영된 활쏘기는 갑오경장
이후에야 군사적인 가치를 완전히 소멸하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고종은 국민건강의 증진을 위해 활쏘기를장려했고, 황학정을
건립하여 일반 궁사들에게 습사장으로 활용토록 조치하였다. 바야흐로 전통적인 국궁이 생활문화의 일부로서 새로운 국민적인
스포츠로 부활했던 것이었다.
2. 군의 국궁 보급과 그 영향
c오늘날 군에서 국궁은 조상들의 상무정신과 풍류정신을 전수해주는
정신문화이자 한민족 고유의 전통 스포츠로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군에서 국궁을 보급하고 있는 중추적인
기관은 육군사관학교를 비롯하여 해군·공군사관학교 등 각군의 핵심장교를 육성하고 있는 사관학교이다. 3군사관학교 생도들은
비록 정규체육과목은 아니지만 국궁을 지속적으로 연마할 수 있는 시설과 시간을 확보하여 습사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육사는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생도들의 ''습사''를 넘어서서 국궁문화연구 및 국궁의 보급을 추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c그러한 육사내의 움직임은 군 지도부의 국궁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지휘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군내의 국궁보급을 크게 진전시켰다. 졸업생으로서 황학정에서 습사하던 전 교수부장 이동희 장군의
화랑정(花郞停) 개장 발의, 학교장 김정남 장군의 동의, 그리고 이재·강성문·김기훈·이현수 교수를 주축으로 하는 사학과
교수들의 국궁에 대한 정력적인 연구열과 노력으로 전통무예였던 국궁은, 문무겸전을 지향하는 사관학교 교육정신으로 수용되기에
이르렀다. 1994년도부터 육사에서 일어난 일련의 국궁에 대한 열기는 군내 국궁 보급의 견인차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확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c1994년 육사에서는 국궁문화대축제를 개최하였고, 1998년
건군 50주년을 맞아 국군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국방부 장관기 전국대회를 개최하였다. 그 과정에서 국궁대회는 군내
국궁보급의 활성화는 물론 민·군 가교의 역할을 수행하는 장으로 발전되었다. 그리하여 1999년부터는 육군참모총장기
전국남녀 궁도대회가 정례화되었고, 지난해로 대회는 제2회를 맞이하였다. 특히, 제2회 대회 때에는 개최 시기에 즈음하여
대대적으로 ''국궁문화(國弓文化)'' 전반에 걸쳐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국궁의 ''대중화'' ''세계화'' ''학문화''를 선도하였다.
c이러한 여건하에서 이제 육사 전 생도들은 전통적인 국궁을 습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생도들의 습사에는 민간 사범들의 역할도 큰 힘이 되었다. 생도자치회에서 운영하는 개인의
취미와 소질을 개발하기 위한 동아리 활동은 생도들이 국궁을 집중적으로 교습할 수 있는 기회로 제공되고 있다. 생도들은
매주 수요일 4시간의 정규 동아리 시간 외에 평일의 자유시간과 공휴일 등 개인활용 시간에 습사할 수 있어 개별적인
관심 여하에 따라 최대한의 개인 활쏘기가 가능하다.
c생도들의 국궁습사 활동은, 1993년 학교장인 장성 장군의 ''신교육과정체계의
정립''을 위한 노력 속에서 더욱 새롭게 인식되었다. 1994년 3월 9일 화랑대연구소에서는 육사에서 ''동아리활동''이란
생도교육에 있어 차원높은 정서생활의 경험을 부여하는 장으로서 심신수련과 조화된 정서함양을 위한 적극적인 교육적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분명하게 규정하였다. 이러한 인식적 전환을 통해 육사의 생도교육에 있어 ''동아리활동''은 ''과외활동''에서
''특별활동''이라는 가치로 자리매김되었다. 국궁 역시 생도들의 심신수련을 위한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은 셈이다. 국궁부는
1995년도 체육위원회 19개 부서 중에 양궁부와 별도로 한 부서를 차지하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국궁·양궁에
대한 차별적 인식없이 궁도부로 유지되어왔던 생도들의 활쏘기 수련활동은 이제 국궁과 양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여 실시되었다.
c또한, 1998∼1999년 육군참모총장기배 전국 남녀궁도대회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군 지휘부의 특별한 관심으로 생도들의 국궁의 습사는 크게 장려되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김동신,
''98. 3∼''99. 10)은 "국궁을 생도들의 심신수련을 위해 적극 장려하라"고 지시하여 생도들의
국궁습사는 여름학기 중에도 가능해졌으며, 생도들은 화랑제나 춘계체육대회 등을 통해 그 기량을 확인하는 기회를 갖고
있다. 생도들의 국궁에 대한 관심도 단순히 습사만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경서연구로까지 발전되고 있다.
이렇듯 육사를 주축으로 한 군에서는 국궁의 특성상 군사적 요소와 문화적 요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국궁의 군내
보급과 사회적 확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더욱이 육사는 국궁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비롯하여 무기공학적인 연구를 선도하고 있어 장차 물리학·의학·생리학적인 연구를 촉진시키는 파급효과가 있으리라 기대된다.
3. 군에서의 국궁 활성화 전망
c재론의 여지없이, 국궁은 문화 기류의 다원화와 현대적인 감각화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는, 우리 민족의 정통정신문화로서 존재한다. 활쏘기는 군사적 수단이라는 군사문화의 기반
위에서 형성되어 점차 유교적인 정신세계에서 국민들의 상무정신(尙武精神)을 구현하는 방법으로, 나아가 선비들의 풍류의식과
결합되어 인간심신의 수련방법으로서 생활문화로 정착되어왔다. 지금은 바야흐로 국궁의 현대화를 통해 국제화시대에 한민족
자존의 구심점으로 삼을 때이다.
육사를 위시한 각군 사관학교가 보여준 국궁에 대한 관심과 보급, 연구활동은 국궁이 지니고 있는 군사적, 문화적, 정신적인
가치의 재발견이요 그 현대화의 가능성을 전망케 해주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국궁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고 폭넓게 접근함으로써
국민건강을 위한 생활 스포츠로서, 또한 국제화시대를 맞아 한국적인 정신문화에 바탕을 둔 문화유산으로서 전 세계인에게
선보이는 야심찬 모색을 위한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었다.
c그러나 국궁의 대중화, 세계화, 학문화는 단지 구호로만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우선 우리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우리의 국궁을 살리고 국궁문화를 풍부하게 재생해내야 할 것이다. 우리 군 역시
지금까지의 성과에 힘입어 국궁의 보급을 보다 역동적으로 전개하여 국군장병의 심신수련을 위한 전술전기로 발전시켜야 한다.
c현재 육사에서 행해지는 국궁 습사활동도 자세하게 본다면 시설이나
장비의 제한으로 생활 체육이나 심신수련용으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접근하는 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국궁 보급의 사활은
사실상 시설과 장비의 확보에 달려있다고 본다. 다행히 우리 군에는 각 단위부대마다 훈련장과 사격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그런 시설을 활용한다면 그 보급율을 더욱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설이나 장비지원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우선적으로 사관후보생이나 장교집단을 중심으로 보급시키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c군에서의 국궁 보급은 국궁에 대한 사회적인 보급·확산과 더불어
상보작용을 일으키면서 그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다. 이렇듯 국궁 보급문제는 군과 사회간에 상관성이 크다. 군에서는
물론 사회에서 국궁을 활성화하려면 한편으로 대국민 홍보를 통해 국궁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과 공감을 확산시켜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사회 각 분야의 현실적인 투자와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간과해서는 안될 점으로 국궁 자체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국궁 자체가 외적으로 정태적이고
현대화를 위해서 쏘는 사람이나 이를 지켜보는 관객 양자를 충족시키는 적절한 긴장감과 흥미를 이끌 수 있는 종목의 개발,
경기방식의 표준화 또는 개량화, 그리고 역동성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분명하게 국궁은 종래의 ''활쏘기(弓射)''가
주는 정적인 성향을 극복하고 보다 역동성을 가미하여 ''경기''의 주체와 객체를 통해 드러나는 효과를 극대화시켜야 한다.
c이러한 국궁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국궁 현대화''의 관건이 될
것이다. 군에서는 군내의 군사교육·훈련환경에 접목될 수 있는 궁사 및 사정장의 표준화·개량화·입체화를 시도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간접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면, 기사법(騎射法)을 활용한 경기방식의
개발이라든지 현재 145미터의 사정장을 표준으로 하면서도 장소적인 제약점을 해소하기 위해 축소된 개량형을 통해서도
그 같은 궁사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과학적인 개량화가 시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 맺 음 말
c국궁의 보급은 군이나 사회의 어느 한 영역에서 추진되어야 할
과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가 뜻을 같이하고 지혜를 모아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오늘의 실정에 적합한 형태로 재창조해낼
때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c그러므로 결론에 대신하여 부언하면 국궁의 ''세계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결과에 대한 졸속한 집착보다는 우리 전통 국궁이 지닌 장점을 극대화하고 이를 현대적인 감각과 신선한 충격으로
만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매력있는 문화성을 재창조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대체로 그 방향을, 표준화·개량화·입체화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전통적인 보사법(步射法)과 기사법(騎射法)과
같은 사법의 발전과정이 주는 의미는 재현되어야 한다. 9순(巡) 25중(中)과 같은 전통적인 수련단계도 유지되어야
한다.
c 그러한 전통적인 경기방식을 표준형으로 하면서도 기타 방식도
개발하여 표준화시켜야 한다.
c 그리고 그러한 방식들은 독립적으로 또는 다른 방식이나 전통무예와 결합된 입체화를 통해 국궁이 주는 매력을 더욱
배가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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