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전쟁사부 선임연구원 조성훈 |
|
c 한국전쟁 포로들에 관한 문서가 소장되어 있는 곳은 맥아더 기념관(The MacArthur Memorial)으로 미국 버지니아주 노폭시에 자리잡고 있다. 맥아더 장군(1880∼1964)은 1961년 그가 말년을 보내던 노폭시에 메달, 훈장 등의 기념품과 함께 이들 문서를 기증함으로써 그 이듬해에 기념관과 도서관이 세워지게 됐다. c그후 그가 지휘했던 태평양 전쟁, 일본 통치기, 한국전쟁에 관한 자료가 계속 수집, 보충되어 현재는 약 2백만건의 문서와 6만건의 사진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자료는 특히 전쟁 초기부터 중공군이 개입한 후 그가 유엔군 사령관으로 전쟁 확대를 주장하다가 해임되었던 51년 4월까지의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c이들 자료 중에 한국전 이전의 것으로는 유엔한국위원회의 활동보고서, 남한정부 수립과정과 미군의 철수관련 문서 등이 있으며, 전쟁 시기 문서로서는 미 극동군 사령부의 일일정보 보고부터 중국과 소련의 방송 청취 분석내용에 이르기까지 그 폭과 깊이가 상당한 수준이다. 일일 작전보고 등은 대개 15일 단위로 정리되어 있다. 이밖에 인천상륙작전, 함흥 철수작전, 미군의 작전과 병력 수송, 북한 점령지역에서의 구호활동 등 한국전쟁사를 연구하는데 꼭 필요 자료들이 적지 않다. c일본 관련 자료 중 상당수는 태평양 전쟁 때의 한국인으로 일본군에 징병되었다가 포로가 된 군인들 자료, 도쿄 전범재판 기록, 일본의 재무장 관련 문서 등 우리와는 무관치 않은 기록들이다. c한편 맥아더 기념관에 소장된 한국전 포로 신문보고서에서 주목할 수 있는 요소는 포로들 중에는 투항자가 많았다는 점이다. 이는 포로가 되기 전부터 공산주의나 북한체제에 회의적이거나 불만을 품은 포로들이 있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미군이 개입하자 결국 전쟁에서 북한이 패배할 것이라는 인식을 하였으며 유엔군이 살포한 8억장 이상의 투항권고 전단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c 포로들은 비교적 유엔군의 신문에 협조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수는 나중에 북으로의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가 되었다. 이들 송환거부 포로의 존재는 휴전협상에서 공산측과의 갈등 요인으로 작용, 협상이 지연되었고 수용소내에서의 좌.우익 포로들 사이에 갈등이 크게 일어나는 한 요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