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자이툰부대와 신이 전해 준 선물
[절망의 땅에서 동방의 등불 희망을 밝혔다 / 2011.08.09]
오늘날 유럽과 중동, 중남미 지역에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K-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 전파의 기폭제는 다름 아닌 자이툰이다.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세계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젖힌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군사력의
파견은 단순한 병력과 장비뿐만 아닌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 혼(魂)까지 함께한다. 오랜 전쟁과 억압에 지쳐 있던 어린이·여성·장애인 등에 대한 진심어린 존중과 배려의 따뜻한 마음은 그들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었
다. 자이툰이 남긴 흔적은 아르빌의 오랜 성채 맞은편에 평화의 금자탑을 세운 거대한 역사(役事)요, 길이 남을 역사(歷史)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에게 자신들이 나아갈 자유롭고 풍요로운 새로운 국가건설의 나침반
이 되고 있다.
▲ 바로 이것, 자이툰처럼(Zaytun like)!
연합군의 안정화 정책은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따라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많은 동맹군이 아르빌로 찾아왔다. 그들은 그린엔젤을 통한 어울림 마당의 한복판에서 현지 주민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 속에서 ‘자이툰처럼(Zaytun Like)’을 깨달았다. 군사력에 의한 영토의 점령은 일시적 승리에 불과하고 현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다름 아
닌 신이 전해 준 선물 ‘자이툰 핸드북’이었다. 이 속에는 존종과 배려의 바탕 위에 치안확보, 민심확보, 재건지원의 기둥을 세워 이라크 재건을 지원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자이툰 민군작전의 노하우를 고스란
히 담았다. 자이툰 핸드북은 2006년에 동맹군 소대급까지 영문판으로 보급됐다.
핸드북의 의미는 자이툰의 단순한 민군작전의 경험담이 아니다. 한국 현대사를 통해 6ㆍ25전쟁의 처절한 고통과 배고픔에서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베트남전쟁을 통해 가난하고 헐벗은 우리가 남베
트남을 위해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어떻게 해 주었는지? 그리고 1993년부터 국제평화유지활동의 현장에서 체득한 총체적 경험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즉 점령군이 아닌 배고픔·아픔·목마름을 아는 동반자의 입장에
서 그들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 희망을 향한 교육 터전을 닦다
전쟁은 땀 흘려 이뤄 놓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눈에 보이는 건물의 파괴가 아닌 인간의 희망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당시 아르빌 일대 사회기반시설, 학교·병원ㆍ복지시설 등은 매우 열악했다. 따
라서 자이툰은 재건지원사업과 그린엔젤을 통해 주민의 마음을 얻기 시작함과 동시에 희망을 향한 교육 터전을 닦기 시작했다.
기술교육대는 아르빌 지역 최고의 직업기술 양성기관이었다. 물질적 지원은 한순간의 배고픔과 목마름 해소는 가능하지만 그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전까지 후세인 정권의 쿠르드 민족에 대한 탄압과 전쟁 후유
증으로 인해 실업률이 35%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술교육대 수료증은 곧 취업을 보장했다. 자동차 정비와 중장비 운전 등 7개 과정ㆍ8주의 교육을 통해 16개 기수 2299명의 기술인력은 쿠르드 정부기관과 여
러 민간기업에 진출했던 것이다. 아프간과 이라크 지방재건팀(PRT)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술교육대는 모범 사례가 돼 이라크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오지(奧地)의 어린이는 축구공에 꿈을 담고, 중동 사막 한가운데 어린이는 태권도를 통해 희망을 키운다. 태권도 5개 교실을 운영하고 경연대회를 개최해 우수자는 방한연수를 실시했다. 높은 문맹(文盲)률을
개선하기 위한 쿠르드어 교실은 197개 학교에서 7300여 명을 수료하게 함으로써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고용창출로 연결됐다. 책과 연필을 들고 흙길을 달려온 여성들이 교실에 모여 앉아 글자와 숫자를 읽는 소리는 쿠
르드의 희망을 읽는 소리였다.
▲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늘을 밝게 하다
자이툰 병원 동방의 천사들은 서부사하라와 아프간, 이라크 나시리야를 거쳐 달려와 섬세한 손길로 아픔을 치유했다. 1일 130여 명의 진료를 통해 외래환자 13만여 명, 입원 및 수술환자 4000여 명을 진료했다. 선천성
심장질환 어린이 20명을 한국으로 데려와 치료함으로써 새 생명의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에 대한 인턴십 교육, 격오지 마을 순회 진료, 취약지역에 대한 이동방역 활동을 실시했다.
새롭게 준공된 16개 보건소에 최신 설비의 의무 장비와 물자를 공여하고, 장비 사용법 교육과 보건소 사후관리팀을 편성해 지속적인 관리 체계를 유지했다. 저소득층 및 고아ㆍ장애인 등 불우한 계층을 대상으로도 물
자공여와 시설물 정비, 환경 개선 등 다양한 지원활동을 실시했다. 고아원과 양로원에는 기초 생활 필수품을, 전쟁 및 고문 피해자 단체와 1998년 독가스 공격으로 인한 안팔 희생자 유가족에 대해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수해마을에 대해서는 적시적으로 시멘트 등 복구 물자를 지원함으로써 그들에게는 언제나 곁에서 아픔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였다. 그리고 전 세계 개발도상국 발전모델로 인정받고 있는 새마을 운동을 뿌리내
리게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주둔지 내 새마을 연수원ㆍ시범마을 선정ㆍ방한연수 등을 통해 2008년 그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스스로 가꾸고 일군 오이ㆍ토마토와 벌꿀의 생산은 소득증대로 이어졌다.
▲ 희망의 등불 자이툰 도서관
2008년 10월 4년 3개월 동안 이라크 평화와 재건 노력을 마무리하기 전, 아르빌 공원 내에 자이툰 도서관이 우뚝 섰다. 후세인 정권 군사 주둔지로서 언론과 학자에 대해 억압을 가하던 곳에 도서관의 건립은 곧 민주
화 도약의 상징이기도 했다. 또한 교육과 문화 발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도서관운영 요원들은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 등을 방문해 선진화된 도서관 운영 시스템에 대한 연수를 받았다. 이와 병행해 다른 분야도
KOICA와 협조해 현지 관료ㆍ언론인ㆍ학생 등 다양한 계층을 망라해 36개 과정ㆍ517명이 한국을 다녀갔다. 사회발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의 주역들이 어떤 청사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직접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껴 본 한국은 그들의 발전 모델로 자리잡는 기회가 됐다.
장서에 기증된 9만3000여 권의 도서를 통해 글을 읽는 청소년의 눈빛은 쿠르드 희망의 등불이 돼 이라크의 밝은 미래를 밝힐 것이다. 그리고 진흙 벌 위에 세워진 파병기념관과 한국홍보관은 그들에게 남긴 진정한 친
구요, 이웃이 돼 오래도록 자이툰의 발자취로 남아 있다. 그 발자취는 그들의 정신적 고향, 자그로스 산맥 기슭에 시와 노래가 돼 이렇게 울려퍼지고 있다.
“자이툰은 언제나처럼 변치 않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친구입니다. 전쟁의 폐허를 성공의 디딤돌로 해 일어선 대한민국 자이툰이 많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모든 처음은 오래오래 기억되듯이 자이툰의 사랑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가슴에 남는 생애 처음 느꼈던 따뜻한 손길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가능성을 보여주고 열어준 그들은 우리의 진정한 친구였습니다. 우리
또한 신이 가져다 준 선물을 오래도록 변함없이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해외파병사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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