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자이툰부대와 희망의 올리브
[`평화의 천사' 둥지 틀고 쿠르드 마음 열다 / 2011.08.02]
2004년 여름, 중동의 심장부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전개한 이라크평화재건사단(이하 자이툰부대) 앞에 북쪽이라는 뜻의 거친 모래바람 ‘샤말(Shamal)’과 뜨거운 열기가 가로막았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는 적대세력의 위협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자이툰부대는 베트남전 이후 40년 만에 최초의 사단급부대로 파견됐다. 다국적군 중 미국과 영국군 다음으로 세 번째 많은 병력이 파견된 자이툰에 대한 관심은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기대 앞에 자이툰은 그동안 해외파견에서 닦은 역량과 평화를 사랑하는 유전자(DNA)를 바탕으로 존중과 배려의 친화력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전선없는 전장, 이라크
2003년 5월 1일 부시 미 대통령의 주요전투 종료 선언은 ‘전쟁 뒤의 전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넘어진 후세인 동상 앞에서의 환호도 잠깐, 순식간에 일어난 절대권력의 종말과 치안공백은 약탈과 방화, 테러로 이어졌다. 연합임시행정기구(Coalition Provisional Authority)에 의한 희망찬 이라크 미래국가 건설 노력은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우세한 군사력으로 승리를 달성하고도 적대세력에 의한 공격이 줄을 이었다. 산발적인 폭동과 극단주의자들의 급조폭발장치(IED : Improvised Explosive Devices) 에 의한 자살 공격 등 다양한 공세행동이 계속됐다.
더구나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오랫동안 억압당해 온 다수파인 시아파 아랍인(전체 인구 2500만 명 중 60%, 1500만 명)과 쿠르드족(20%, 500만 명)들은 수 세기 동안 권력을 휘두르며 매우 혐오스러운 바트당을 장악해 왔던 소수인 수니파 아랍인(19%, 475만 명)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과 증오에 가득차 있었다. 이러한 정세를 사전에 대비하지 못한 연합군의 안정화 정책은 혼미를 거듭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6월 이라크 임시 정부에 주권이 이양되고 총선 등 정치 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이툰은 2003년부터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에서 재건과 의료지원을 펼치고 있던 서희ㆍ제마부대를 길잡이로 아르빌에 전개하게 됐다.
자이툰, 아르빌에 둥지를 틀다
아르빌은 이라크 북동부 자그로스 산맥 기슭에 위치한 도시로 쿠르드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지다. 아르빌 인근의 메마른 황무지 위에 3000여 명 평화의 전사(戰士)가 지낼 둥지는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건설됐다. 주둔지 일대는 이란ㆍ이라크 전쟁 시 포병 진지가 산재해 있던 곳으로 각종 불발탄과 은닉탄 폭발 위협이 높았으나 6개월 만에 캠프를 설치했다. 막사와 급수 등 기반시설을 건설 후 주둔지 방호태세를 완비하기 위해 헤스코 방벽·대피호·방호벽을 설치하고, 철망 울타리·대전차구 방벽·해자(垓字 : 울타리를 연해 깊은 물길)·감시 및 화력장비를 갖췄다. 또한 방문자통제소(Visitor Control Center)는 폭발물 탐지견을 비롯해 다중 대비책을 강구했다. 그리고 인간정보팀 등 다양한 첩보수집 수단과 정보교류를 통해 위험을 사전에 예지하는 데 주안을 두었다.
영외작전 여건을 보장하기 위해 주 보급로 및 예비 보급로에 대한 도로정찰인 ‘크로마이트(Chromite)작전’, 주둔지 주변 적대세력 활동 예상지역에 대한 취약지 기동순찰과 정밀수색인 ‘가디언(Guardian)작전’을 불규칙적으로 실시했다. 그리고 대공화기 위협으로부터 항공기 안전을 위한 ‘은하수(Milky Way)작전’, 주둔지와 민·군작전지역의 불발탄·유기탄 탐지와 제거를 위한 ‘두더지 작전’으로 안전을 도모했다. 또한 영외 유엔 이라크지원단(UN Assistance Mission for Iraq)의 경계작전과 교민보호를 위한 코리아타운을 운용했다.
쿠르드의 닫힌 마음을 얻다
아르빌에 둥지를 튼 자이툰은 서서히 쿠르드의 닫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즉 군사작전의 성공 열쇠는 현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이 우선적이라는 것은 과거 많은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에 가능했다. 이를 위해서 쿠르드지방정부(Kurd Regional Government)의 협조와 주민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지역 주민과 정부의 신뢰 확보를 위한 친화활동 중에서는 ‘그린엔젤작전’이 단연코 으뜸이었다. 주둔지 주변 마을로부터 책임지역 내 전 지역으로 범위를 확대해 나갔다. 마을의 숙원사업을 해결한 후 준공식 등을 연계해 대대 규모 다기능 그린엔젤과 중대 규모 소기능 그린엔젤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했다. 여기에는 의무지원과 물자 공여 등이 병행됐는데 가장 백미(白眉)는 태권도와 사물놀이, 쿠르드 민족 고유의 민속춤인 초피댄스였다. 이러한 작전은 최강의 전투력과 함께 만능 엔터테인먼트 ‘끼’로 탑재한 특수전 부대 요원들에 의해 수행됐다. 장병들은 적 앞에서는 한 치의 두려움도 없는 강한 용사이며, 평화를 위해서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손길을 가진 부드러운 천사였다. 흥겨운 가락에 맞춰 함께 손잡은 한마음 축제의 장을 통해 장병들과 쿠르드인은 한 가족이 됐고 그들의 굳게 닫힌 마음은 가슴을 활짝 연 채 자이툰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둠의 아르빌, 희망의 도시로 바꿔
2005년에 접어들면서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MNC-I)의 주 노력 방향은 ‘적대세력에 대한 공세작전’에서 ‘치안전력 육성’으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이라크군과 경찰 및 국경수비대에 대한 군사교육을 실시하고, 건물신축과 장비ㆍ물자를 공여했다. 이와 아울러 안정적 치안확보를 기반으로 도로ㆍ전기ㆍ급수 등 열악한 사회기반시설과 교육ㆍ보건 등 주민숙원사업을 지원하는 재건지원사업을 통해 피폐된 아르빌 지역은 희망의 도시로 탈바꿈되기 시작했다.
재건지원사업은 민사협조본부의 주도로 ‘민사작전 및 재건지원 기본계획(Master Plan)’에 의해 체계적으로 추진했다. 이를 위해서 군 예산뿐만 아니라 지휘관이 작전지역 내 긴급한 재건 및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미군의 ‘지휘관 긴급 사업(Commander’s Emergency Response Program)’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사업 추진과정도 기본계획 수립 단계부터 쿠르드지방정부 관련기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사회단체와의 긴밀한 협의를 바탕으로 추진해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다만 우리가 건설해 준 많은 시설물 하자보수(A/S)에 대한 보완책이 요망된다. 즉 파견 기간에는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하지만 철수 후에는 현지의 공공기관이나 단체의 여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KOICA 및 NGO와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적정기간 동안 사후관리를 통해 우리의 값진 노력이 퇴색되지 않도록 냉철히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6ㆍ25전쟁의 폐허로부터 산업화 과정을 통해 축적된 우리의 경험은 자이툰을 통해 그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르빌의 하늘을 짙게 드리웠던 어두운 먹구름은 쿠르드의 찬란한 무지개로 바뀌기 시작했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해외파병사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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