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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2 08: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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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기획-한국군 세계를 가다<27>
<27>아프간 안정화 작전과 한국군 협조단
[전선 없는 전장서 `1등 글로벌 軍' 이름값 / 2011.07.12]

2003년 5월부터 아프간 전쟁은 결정적 군사 작전에서 안정화 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는 아프간 과도정부 정착 지원과 탈레반 잔당, 알 카에다 세력 소탕 등 군사 작전과 재건 지원을 병행하는 것이다. 한국군은 2001년부터 하늘 길과 바닷길은 청마·해성부대, 지상에는 2002년 동의부대와 2003년 다산부대가 각각 파견됐다. 이로써 육·해·공군은 다국적군의 일부로 연합작전과 함께 소규모 지방재건팀(PRT)이 안정화 작전을 수행했다. 이러한 작전 수행에는 다국적군 한국군협조단과 참모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지대했다. 미 본토의 중부사령부와 아프간·한국이 24시간 작전 협조체제를 유지하면서 전선 없는 전쟁의 최전선에서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프가니스탄 공병지원에 나서는 육군건설공병단 다산부대 본대와 동의부대 3진 장병 파병환송식이 2003년 2월 26일 육군특전교육단에서 거행됐던 모습의 사진
현지 주민들과의 현장 토의를 통한 PRT 활동 모습. 아프간에서의 PRT 운용은 2007년 이라크 자이툰부대, 2010년 오쉬노부대의 PRT 활동이 정착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 아프간 안정화 작전

아프간 안정화 작전 핵심은 동맹군 주도 아래 지방재건팀(PRT: 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을 5개 지역으로 구분해 국가 재건을 이루는 것이다. 주요 활동으로는 아프간 정부군 양성, 행정·공권력을 확보하고 경제·사회 안정과 치안 유지 노력을 하면서 인도주의적 구호활동과 심리전을 병행했다. 여기에는 군사 및 민간 인력이 혼합 구성돼 아프간 정부 부처,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가 아프간 국민들에게 재건과 안정화 프로그램을 잘 전해줌으로써 아프간 정부의 영향력 확대를 이끌었다.

한편 국제사회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0년 중반까지는 아프간 정부의 무능력과 부패, 장기간 전쟁으로 인한 인프라의 부실, 군벌·파벌 간의 분열 등으로 큰 진전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국제안보지원군의 많은 노력으로 최근 점진적인 성과를 거둬 7월 1일부터 카불 등 7개 주 치안자치권이 아프간 정부에 이양되기 시작했으며, 오는 2014년을 목표로 단계적 철수를 모색하고 있다.

▶ 한국군의 지방재건팀(PRT) 참여

다산·동의부대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2003년 9월부터 한국군 9명을 미군이 운용하는 쿤두즈 PRT에 파견했다. 당시 미군은 아프간 전체 35개 주당 1개소씩 PRT 설치를 목표로 추진했으며, 12개 소를 운영하고 추가 설치 준비를 하면서 다른 국가들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었다. 이때 한국군 PRT는 다산부대 민사반으로 편성돼 미군의 활동에 동참, 경험을 축적하면서 독자적인 안정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후 2004년부터 8명으로 편성해 파르완·바그람 PRT에서 책임지역 내 도로·학교·지역보건소 신축 등 사회기반 시설의 확충과 시공자 교육을 통해 한국군의 우수한 기술을 전파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한편 2003년 3월 아프간 과도정부의 정치·경제·사회적 재건과 제반 행정 지원을 위한 유엔 아프간 지부(UNAMA: UN Assistance Mission in Afg.)에 군사고문장교(중령) 1명을 파견하고 있다.

최초 PRT 규모 확대 요청에 대해 당시 이라크에 서희(건설공병단)·제마(의료지원단)부대를 파견하고 있었고, 전투 병력 추가 파견을 신중히 저울질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프간에서의 PRT 운용은 좀 더 경험을 축적한 후 파견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아프간에서의 PRT 경험은 2007년 이라크 자이툰부대가 주둔하던 아르빌 RRT와 2010년 오쉬노부대 PRT 정착의 산파역(産婆役)을 했다.

▶ 다국적군 작전협조 체제

‘테러와의 전쟁’은 한국군에게 한미 연합작전의 범주를 벗어나 국제적으로 다국적군과 연합작전을 수행해 글로벌군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9·11테러 이후 미 중부사령부(CENTCOM: Central Command)는 아프간 연합군사령부(CFC-A: Combined Force Command-Afg.)와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MNF-Ⅰ: Multinational Forces) 등의 작전을 통제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미 중부사에 다국적협조본부(MNCC:Multinational Coordination Center)를 운용했다. 여기에 2001년 9월부터 영국과 캐나다 등 총 61개국 협조반이 전개하면서 한국군도 11월부터 참가했다. 한국군협조단은 합참을 대표해 파견 부대 작전에 대한 협조를 수행하면서, 작전 기획과 작전수행 절차 습득, 신교리의 획득 및 전파 등 많은 기여를 했다.

아프간 현지에서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연합합동군 동맹군사령부 협조반(CJTF: Combined Joint Task Force)에 연 23명이, 2007년까지 아프간 연합군사령부 참모로 연 9명이 파견됐다. 또 2008년부터는 아프간 나토 훈련임무단 및 치안전환사령부 참모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파견 장교들은 탁월한 어학능력과 한미연합작전 경험을 바탕으로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다국적군 주요 지휘관?참모와의 교류를 통해 군사외교관 역할도 병행함으로써 한국군의 우수한 역량을 보여줬다. 또한 동맹군사령부의 시시각각 변화되는 작전상황을 파악하는 한편 한국군의 활동사항을 보고했다. 그리고 6개월 단위로 부대 단위 교대 시 적시 적절한 조치 및 협조, 한국에서 방문하는 주요 인사 안내 등을 원활하게 수행했다. 이들의 헌신과 열정은 한국군 임무수행과 국제군으로서 위상을 드높이는 밑거름이 됐다.

▶ 아프간 전쟁의 교훈

아프간 전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많다. 스스로 국가를 지키지 못하고 분열된 민족의 미래는 평화가 아닌 가난과 슬픔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아프간은 국제정치의 비정한 산 교육장이자 군사적으로 강대국 신형 무기의 실험장이 되기도 한다.

베트남 전쟁은 ‘자전거(북베트남군)와 비행기(미국의 월등한 항공력)’와의 전쟁이었다. 아프간 전쟁은 ‘당나귀(탈레반군의 보급 수단)와 트럭(소련의 군수물자 수송 수단)’과의 전쟁에서 ‘급조폭발물(IED)’ 대 ‘팩봇(PacBot: 미군의 폭발물 처리 로봇)’으로 진화해 힘겨운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곧 첨단무기로 잘 갖춰진 군대도 원시적인 수단이지만 저항 정신이 있는 군대와는 손쉽게 승리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프간의 전장 환경은 한반도에서의 전장 환경과 결코 다르지 않다. 북한 동북부 지역의 산악 지형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거부하는 저항세력의 은신처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 지역에서의 안정화 작전에 대비해 아프간에서의 안정화 작전 결과를 우리의 현실에 접목, 미래전에 대비해야 한다. 즉 다양한 국제기구와 비정부조직(NGO) 활동 관찰과 교류 등을 통해 국제적 안목과 식견을 넓히고,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진 등을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군사 작전은 한 국가에 의해 수행되기보다 국제적 안보 협력과 다국적군 연합작전에 의존하는 추세다. 그러므로 다국적군 연합작전 경험을 바탕으로 연합 및 합동작전 수행 교리 발전에도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로마의 군사이론가 베제티우스(Vezetius)의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을 상기하면서, 언제 현실로 갑자기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더욱 항재전장(恒在戰場)의 상무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해외파병사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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