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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7.07.09 15: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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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8
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 -<24>맥아더의 한강방어선 시찰과 국군병사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24>맥아더의 한강방어선 시찰과 국군병사

“철수명령 없인 죽는 순간까지 지킬 것입니다”


▲서울 함락 후의 전황

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점령된 다음날인 1950년 6월 29일 일본 도쿄의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15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다급히 한강방어선을 방문했다. 그의 방문 목적은 물론 한국의 전황을 직접 살펴보고 미 지상군 투입의 필요성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었다.

맥아더 장군 일행은 전용기 편으로 일본 하네다 공항을 떠나 오전 10시 수원비행장에 도착했고, 극동군사령부 전방지휘소에서 처치 준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다음 곧바로 전선을 살펴보기 위해 1번 국도를 따라 북상, 국군사령부를 방문했다.이때 한강에서는 미 전방지휘소 요청으로 오키나와의 미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B - 26 폭격기가 한강철교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미 공군기의 지원을 보고 한강 남안에서 개인호를 파 놓고 그곳에서 적을 방어하고 있던 국군 장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한강 부근에는 적의 포탄이 산발적으로 낙탄되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었다. 맥아더 장군을 수행한 미 군사고문단장 라이트 대령이 상황이 좋지 않으니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권유했으나 그는 “아니, 나는 한강을 봐야겠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맥아더 장군은 적의 포탄을 무릅쓰고 시흥지구전투사령관 김홍일 소장에게 안내돼 수도사단 제8연대가 개인호를 파고 방어진을 구축한 동양맥주공장(현 영등포 공원) 옆의 조그마한 언덕에 도착했고 거기에서 쌍안경을 들고 멀리 한강전선을 관찰했다.

▲맥아더 원수와 국군 병사의 만남

맥아더 장군은 한강 일대를 살펴본 후 개인호에서 진지를 지키고 있는 어느 국군 병사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병사! 자네는 언제까지 그 호를 지키고 있을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병사는 “각하께서도 군인이시고 저 또한 군인입니다. 군인이란 모름지기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저의 상관이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제가 죽는 순간까지 이곳을 지킬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통역으로부터 그 말을 들은 맥아더 원수는 감동한듯 병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무하면서 “이 병사에게 전해 주게. 내가 도쿄로 돌아가는 즉시 지원 병력을 보내 줄 터이니 그때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싸우라!”고 했다.국군 일개 병사가 역전의 노장인 그를 감격케 한 이 극적인 장면은 당시 국군이 비록 열세에 몰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으나 그 적개심과 투지만은 왕성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 듯했다.

맥아더 장군은 병사의 손을 잡고 격려했으며 결과적으로 그 병사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물론 맥아더 장군은 전선을 시찰하기 전 이미 미 지상군을 투입해 한국군을 지원해야 한다는 결심을 갖고 있었지만 국군 장병들의 방어의지가 굳건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음은 분명했다.

따라서 맥아더 장군의 한강전선 시찰은 그 자신에게는 국군 재기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그리고 국군장병에게는 미군 지원이 확약됨으로써 사기 고양의 더 없는 계기가 됐다.

다시보는 6•25를 매주 연재해 온 양영조 전쟁사1팀장을 대신해 다음 주부터는 군사편찬연구소 남정옥 선임연구원이 새롭게 이 코너를 맡게 됐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호응을 부탁합니다.

<양영조 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1팀장>

[국방일보-2007.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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