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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7.06.18 14: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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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포커스] 2007년5월호:우리나라 해외파병의 역사
[국방포커스 2007년5월호 기고]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국방사부 선임연구원 백기인
평화의 건각(健脚), 국군의 해외파병
- 우리나라의 해외파병의 역사 -

지정학적으로 주변국과 긴밀한 전략적 관계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는 역사상 해외 파병에 대한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
혹자 는 베트남 파병 이전에 우리 역사에 무슨 해외파병이 있었는가 하겠지만, 따져보면 일찍이 고려시대에 여·몽 연합군이 일본 을 정벌한 것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명 과 함께 여진 및 후금을 정벌한 일, 그리고 청의 요청으로 나선정벌군을 러시아에 파 병한일등적지않은파병이있었다.

전통시대의 해외파병은 주변국의 판단과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이었지만, 나름대로 외부로부터 종묘사직과 왕조의 안녕을 위해 주변의 국제질서에 조응하는 현실적인선택의 결과였다. 그 과정에서 인적·물적인 측면의 어려운 점이 있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국가방위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면서 새로운 전법을 연구개발했던 것이다.
60조 2항 국회의 파병동의,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2조의 공동 및 상호원조의 필요, 이 외에 UN안보리의 결의 등에 기초하여 파병절차가 실행된다. 따라서 국군의 해외파병은 본질적으로 국제평화와 국가이익 및 정부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서 결정되는 국가행위인 것이다.

국군의 베트남 파병은 1964년 미 존슨 대통령의 파병 요청으로 시작되어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 6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최초에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이 파견되었고,이어 군사원조단(비둘기부대)과 주월사령부를 비롯하여 맹호·백마·청룡·십자성·비둘기·백구·은마 등 전투부대를 포함하여 8개 부대에 연인원 32만 5,517명의 병력이 베트남전에 투입되었다.

1991년 1월 17일, 유엔의 결의(제678호)와 국제사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으로부터 철군하지 않음으로써 걸프전이 발발하였다. 당시 한국정부는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1월 14일 국군의료지원단을 파견했는데, 연 인원 154명이 사우디에 주둔하여 활동했고 이어 종전까지 160명의 공군수송단을 아랍에 미리에트에 파견하여 걸프전을 지원하였다.

그 후 탈냉전적인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지역분쟁이나 국가간의 갈등이 증대되자 유엔의 요청에 따라 우리 군은 1993년 7월 소말리아에 250명 규모의 건설공병단을 시작으로 이듬해 3월 18일까지 연인원 516명의 병력을 파병했다. 당시 유엔의 평화유지활동과 분쟁해결 및 재건활동 노력이 활발해지면서 한국군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커졌던 것이다.

그리고 1995년 10월부터 약 1년간 연 인원 600명의 야전공병단이 앙골라에서, 1999년 10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연 인원3,200여명에달하는 상록수부대가 동티모르에서, 2006년 5월까지 서부사하라서는 제23진에 걸친 국군의료지원단이 국제평화군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면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밖에 1994년 인·파 정전감시단을 파견한 이래, 그루지야, 라이베리아, 브룬디, 수단, 아프가니스탄 등에도 우리 군의 옵서버(MO)를 파견하여 해당지역의 정전감시 및 조사 임무를 수행해 오고 있다.

특히 1997년 3월부터 1998년 3월까지 안충준 장군이 UNMOGIP(인파 감시단)의 감시단장으로, 2002년 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황진하 장군이 UNFICYP(키프러스평화유지군) 사령관으로 근무함으로써 한국군의 뛰어난 역량을 널리 알렸다.

이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개된‘항구적 자유작전’에 다국적군의 일원으로서 해군 및 공군 수송단(해성과 청마)을 파병한 것과 2002년부터 연 인원 1,956명에 달하는 육군의료지원단(동의부대)과 공병부대(다산부대)을 파병한 것, 그리고 2003년‘이라크 자유작전’에 건설공병지원단(서희부대)과 의료지원단(제마부대)을 파병했다가 이를 다시 자이툰부대로 부대위치를 전환하여 2007년 4월 현재까지 연 인원 16,458명이 평화재건활동을 수행한 것은 대테러전쟁 지원 차원에서 국군을 해외파병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해외파병, 국력신장의 지렛대

이렇듯 국군은 현대사에서 베트남 파병 이래 32만여명의 병력을파병해왔고, 현재도 연 인원 18,000명이 파병 업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 오늘날 국군의 해외파병은 한국의 달라진 국제적 위상을 말해주는 표징이요, 국력신장을 가늠하게 하는 지렛대다. 군의최우선적 목적이 국가방위에 있음이 분명하지만, 국제군으로서의 평화유지활동 역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국군의 역할이다. 건군기에 혹독한 전쟁의 시련 위에서 성장해온 국군은, 인류의 번영과 공동발전에 평화가 얼마나 긴요한 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세계평화의 건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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