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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4 10: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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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54>유엔군사령부의 특징과 작전지휘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54>유엔군사령부의 특징과 작전지휘
한국전 참전 22개 연합군 ‘통괄 지휘’

▲창설과 작전지휘

유엔군사령부는 한국전선에 참전한 유엔회원국 군대를 통괄 지휘하기 위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의거 설치된 연합사령부다. 한국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으나 이승만 대통령이 국군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 위임하면서 유엔군의 일원으로 싸우게 됐다. 미국은 유엔이 유엔사 설치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에 별도로 사령부를 설치하지 않고 미 극동군사령부가 그 역할을 대행토록 했다.

이에 미국은 참전국 장교를 부사령관과 참모로 편성하지 않았다. 역사상 연합군사령부는 참전국의 군 규모를 고려해 지휘부를 구성한 것이 관례(慣例)나 6·25전쟁 때는 그러지 않았다. 영국이나 다른 유엔참전국이 유엔군사령부의 참모 부서에 자국군 장교를 연합 참모로 기용하지 않은 것은 이를 몰라서가 아니라 6·25전쟁이 단기간에 유엔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대통령은 유엔군사령부의 조직상 문제를 간파하고 중공군 개입 후 유엔군부사령관을 신설해 한국군 장성을 임명하려고 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따라서 6·25전쟁 동안 유엔군사령부의 모든 참모는 미군 장성들로 편성됐다. 이에 따라 한국전선의 모든 작전은 미군의 주도로 전개됐다.

하지만 공산군의 최고사령부인 ‘중조연합사’가 한국전선에 위치하며 현지에서 작전지휘하는 것과는 달리, 유엔군사령부는 일본 도쿄의 사령부에서 지휘하는 원격방식을 취했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은 그런 지휘 공백과 결함을 메우기 위해 개전 초부터 한국전선의 유엔군 지상부대에 대한 권한을 미8군사령관에게 위임해 수행케 했다. 그는 또 작전지휘의 효율성을 위해 전쟁의 중요 국면마다 한국으로 건너와 작전회의를 주재하며 적시적인 지휘결심을 해 주었다.

▲편성과 군수지원

한국군과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은 다분히 ‘국제적 군대’였다. 유엔의 깃발 아래 뭉친 자유 우방국 군대는 22개 연합군으로 구성된 대군(大軍)이었다. 이들 국가로는 한국·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프랑스·그리스·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콜롬비아·에티오피아·필리핀·타이·터키·스웨덴·이탈리아·덴마크·노르웨이가 한국에 군대를 파견했다.

이들 유엔회원국 군대는 미군의 방침에 따라 한국의 유엔군 보충대에서 미군 교리에 의거 훈련을 받은 후 주한미군 사단에 대대 단위로 배속됐다. 미군 사단에 배속될 때는 언어와 관습, 그리고 나라별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 배치했다. 영국 여단만 후일 영연방1사단으로 재편성돼 독립적으로 운용됐다.

유엔군의 병참지원은 전적으로 미군 책임이었다. 미 군수책임자는 유엔군에 대한 군수지원, 즉 음식과 개인피복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레이션은 동양 군인을 제외하고 문제가 없었으나 이슬람 국가인 터키 군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고, 힌두교 국가인 인도 군인은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리스 군인은 고구마·콩을 싫어했다.

유럽군인은 빵을, 지중해 연안의 군인은 야채·올리브기름을 추가로 지급했다. 동양 군인은 밥을 먹어야만 했고, 기타 음식은 부식에 불과했다. 그들은 스테이크를 주면 쌀과 같이 끊여 먹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미국 청교도는 미군에게 술을 제공하지 못하게 했고, 프랑스·영국 군인은 자국의 포도주와 위스키를 요구했다.

군복은 문제가 없었으나, 터키·그리스 군인에게는 볼이 넓은 군화가 필요했다. 타이·필리핀 군인에게는 그들의 신체에 맞는 작은 크기의 피복류가 필요했다. 미국은 이런 군대를 지원하며 싸웠던 우리의 영원한 혈맹이다.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8.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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