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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0 09: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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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국군발달사-<3>국방부의 창설 과정
[군사기획] - 국군발달사
<3>국방부의 창설 과정
1948년 정부 수립으로 공식 출범

미 군정기인 1945년 11월 13일 후일 국방부로 발전하게 되는 국방사령부(ODND)가 발족했다. 사령부는 중앙청에 위치한 군정청 별관에 있었다. 그해 10월 31일 미 군정청의 치안국장 겸 헌병사령관 쉬크 준장이 건의하고, 아놀드 군정 장관과 맥아더 사령관의 승인을 거쳐 군정법령 제28호(Ordinance No.28)로 설치한 것이다.

국방사령부는 군무국과 경무국으로 편성됐고, 군사업무를 담당한 군무국 예하에 육군부와 해군부가 있었다. 사령부는 군무국의 조직을 보강하고 46년 1월 15일 경비대 창설을 위한 모병사업을 전개하며 ‘국방군 건설’에 힘썼다. 3월 29일 경찰업무를 보던 경무국을 분리 독립하고, 장차 정부 수립에 대비해 군정청의 집행부서를 국(局)에서 부(部)로 개칭할 때 국방부(DND)라 했다.

국방부라는 명칭은 임시 정부의 헌법안에서도 잠시 보이지만, 공식기관 명칭으로 사용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개칭과 무관하게 그 임무와 기능에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 미소공동위원회의 소련 측 대표가 “국방부는 무슨 의도로 설치했는가”라고 항의하자 다시 치안 목적의 국내경비부(DIS)로 변경했다.

아직 한국의 장래문제가 미소 간에 결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후 아예 한말의 군제인 통위영을 본떠서 통위부(統衛部)라 했다. 청사는 현 퍼시픽호텔이 있는 서울 중구 남산동 2가에 위치했다.

통위부는 46년 9월 12일, 광복군 출신의 유동열 부장이 취임하면서 건군의 요람이 됐다. 예하에는 조선경비대총사령부와 조선해안경비대총사령부를 뒀다. 주요 결정을 내릴 권한이 통위부장에게 주어졌고, 조선경비대의 모든 통신·명령·지휘·요구는 한국인 참모를 통해 하달했다. 이제 한국어가 공식어가 됐고, 영어는 중요 문서에만 병기됐다.

48년 5·10 총선거 전후로 통위부는 경비대를 5만 명 수준으로 확장하는 증강계획을 마련하고, 정부 수립과 동시에 국방부로의 새 출발을 준비했다. 8월 31일, 유동열 부장과 이범석 초대 국방부장관 사이에 사무 이양식이 있었다. ‘정부조직법’(법률제1호)에 의해 국방부로 모든 임무와 기능을 이관하는 절차였다. 유부장은 “심·덕·체를 하나로 조국의 재건과 방위에 중추가 돼 달라”며 장도를 축하했다.

당시 청사는 현 외환은행 본점(구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위치해 서쪽을 국방부가, 동쪽을 육군본부가 사용했다. 49년 6월 30일 지금의 용산우체국 후면(구 조선군사령부 청사)으로 이전했다가 전쟁으로 정부가 부산으로 천도할 때 수정초등학교로 옮겼다.

53년 7월 30일 환도 시 후암동 청사(구 서울지방병무청)로, 다시 70년 9월 1일 현 국방부 구청사로 신축 이주했다. 그리고 2003년 10월 13일 구청사 뒤쪽에 신청사를 마련하고 국방부 - 합참 공동 청사의 시대를 열어 군정·군령의 통합성을 더욱 강화하게 됐다.


<백기인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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