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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4 10: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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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51>리지웨이 美8군사령관의 작전지도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51>리지웨이 美8군사령관의 작전지도
부대 사기·지휘관 리더십 중시한 전략가

▲맥아더의 추천과 이대통령의 평

미8군사령관 워커 중장의 뜻밖의 전몰(戰歿)에 따라 리지웨이 중장이 그 후임에 임명됐다. 리지웨이는 맥아더 요청에 의해 미8군사령관에 전격 발탁돼 12월 27일 한국에 도착했다. 맥아더는 “워커 장군 사후 내 선택과 추천으로 리지웨이가 사령관에 임명됐다”고 말하면서 “나는 그를 30년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군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교양 있는 신사로 지금까지 사귀어 온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미군 고위 지휘관들에 대한 인물 평점이 박하기로 소문난 이승만 대통령도 리지웨이 장군과 첫 대면 후 “훌륭한 지휘관을 보내 준 워싱턴과 맥아더 장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겠다”고 말할 정도로 흡족해했다. 그는 이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미8군을 일본으로 철수시키기 위해 부임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사령관으로 부임할 당시 전선 상황은 최악이었다. 미국이 예상하지 못한 중공군 개입과 인해전술, 미군의 38선으로의 끝없는 후퇴, 유엔군의 패배의식과 사기 저하가 그것이었다. 이때 이대통령도 중공군에 맞서 싸우기보다 후퇴만 하는 유엔군의 전략을 의심했다. 작전상 후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것이 많았다.

미국은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시킬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 때문에 이대통령은 신임 리지웨이 8군사령관의 언행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대통령을 방문한 리지웨이가 가슴에 수류탄, 허리에 권총과 탄띠를 두른 제2차 세계대전시 전투복 차림으로 “각하, 저는 한국에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에 주둔하려고 온 것입니다. 기어이 적을 박살내겠습니다”라고 군인답게 말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장군은 이대통령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사기가 저하된 미8군을 재정비해 중공군을 38선 이북으로 밀어냈고, 그 때문에 대통령은 그를 아들처럼 사랑하며 믿었다.

▲작전개념과 작전지도

리지웨이는 운동과 문학 등 다방면에 재능을 지닌 진취적 성격의 미 육사 출신이었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반영하듯 8군사령관으로 부임한 그는 사기가 저하된 미8군을 공세적인 부대로 전환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그는 부대의 사기와 지휘관의 리더십을 중요시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한국의 국방 수뇌들에게 일선 부대를 방문해 사기를 올려주도록 건의했고, 전선부대의 시찰을 통해 미군 장병들의 사기를 고취했다.

그는 지휘관 중심의 전투지휘를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지휘관의 중요성을 체득한 그는 무능하거나 활동에 지장을 주는 나이 많은 지휘관을 교체했다. 그 결과 미 군단장 3명 중 2명을 비롯해 사단장 7명 중 4명, 사단포병사령관 6명 중 4명을 교체해 8군 분위기를 쇄신했다. 그는 고급 지휘관들의 현장지휘를 강조하면서 자신도 최전선에 지휘소를 개설해 진두지휘했다.

그의 작전개념은 ‘가장 작은 희생으로 적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것’으로 근본적인 목표는 중공군의 섬멸에 뒀다. 이를 위해 그는 전세가 불리해지면 한 단계씩 뒤로 물러나면서 중공군을 두들겼다가 중공군이 물러나면 그만큼 나아가며 철저히 공격해 섬멸해 나갔다. 그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실천해 나가는 뛰어난 전략가이자 공격형 지휘관으로 정평이 났다. 이는 38선으로 진격하며 붙인 8군의 킬러(Killer)·돈틀리스(Dauntless)작전에서 보듯 그가 어떤 군인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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