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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4 08: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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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
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64>군인과 정치가의 전략적 차이가 근본 원인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64>군인과 정치가의 전략적 차이가 근본 원인
신앙은 곧 전력…군종제도 도입

1951년 4월 11일 트루먼 대통령은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원수를 전격 해임했다. 그는 태평양의 시저이자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으로 숭앙받던 맥아더를 4개 직책(유엔군사령관·주일연합군사령관·극동군사령관·극동육군사령관)에서 해임했다. 맥아더는 제1·2차 세계대전에 이어 인천상륙작전의 대성공으로 프랑스 전쟁영웅 나폴레옹에게 부여했던 ‘군신(軍神)’ 칭호를 얻었다.

그는 중공군 개입과 유엔군의 37선 후퇴로 명성이 손상되는 듯했으나, 유엔군 재반격의 성공으로 되찾았다. 그러나 유엔군이 서울수복과 함께 38선을 넘어 북진하는 과정에서 그는 해임됐다. 이날은 미8군이 중부전선의 전략적 요충지인 철의 삼각지대 확보를 위해 실시한 돈틀리스(Dauntless·不屈) 작전의 첫날이었다.

미국 자료에 의하면 맥아더 해임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맥아더가 전쟁과 관련해 대외적으로 발표한 발언이 미국 대외정책에 혼선을 가져와 대통령을 곤란하게 했고, 둘째는 이런 맥아더의 발언에 대통령이 금지 지침을 내렸는데 이를 어기자 ‘대통령에 대한 불복종 및 권위의 도전’으로 보고 해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전문가들은 해임의 근본 이유를 두 사람의 전쟁수행 개념 차이에서 찾고 있다.

맥아더는 전통적 군인 가문에서 태어나 미국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엘리트 코스를 밟아 가장 성공한 군인으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전쟁에서 승리를 대신할 것은 없다’라는 의미를 체득한 전쟁에서의 완벽한 승리지상주의자다. 그가 6·25 때 자신에게 주어진 북한군 격멸과 무조건 승리에 매진했던 것도 이런 연유다.

그런 그에게 워싱턴의 만주지역 폭격제한 조치는 전쟁의 군사적 승리는 물론이고 전쟁수행 자체에까지 의구심을 줬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지도 지지도 말라는 것’으로 보였다.반면 트루먼은 군에 대한 문민우위의 미국적 사고방식을 지닌 정치가로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교훈과 제3차 세계대전의 예방 차원에서 전쟁을 수행했다.

그의 전쟁정책은 한반도에서 확전을 피하고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빌미를 중공·소련에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트루먼에게 확전을 자극하는 맥아더의 발언은 대통령의 지시를 위반하고, 참전 우방국에게 미국 정책을 호도해 대외정책에 혼선과 불신을 가져온 행위였다.

트루먼은 맥아더의 언행을 대통령에 대한 불복종과 권위의 도전으로 보고 국방장관·국무장관·대통령 특별보좌관·합참의장·3군 총장에게 이의 처리를 지시했다. 이들은 논의 끝에 맥아더의 교체를 건의했고, 트루먼은 이를 수용해 51년 4월 10일 맥아더의 소환명령에 서명하고, 다음날 11일 해임을 통보했다.

맥아더 해임은 제3차 세계대전 예방이라는 제한전쟁의 틀 속에서 세계 전략을 지도하는 정치가 트루먼과 한반도에서 북한군을 격멸하고 완전한 승리를 추구할 책임이 있는 군인 맥아더 간의 전략적 괴리가 빚어낸 결과였다. 맥아더 해임에 미국민은 분노했다. 미국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트루먼의 초상화에 불을 붙이는 극단적인 행동을 했고, 반면 미국에 귀환한 맥아더를 전쟁영웅으로 환대했다.

맥아더 해임은 원인·절차·결과에 관계없이 휴전을 바라는 워싱턴의 정치 지도자에게는 정당한 조치였을지 모르나 전선에서 피 흘리며 싸우고 있는 군인에게는 이해되지 않은 처사였다. 미 상원이 진상을 캐고자 개최한 맥아더 청문회가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 것도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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