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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9 08: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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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국군발달사-<9>호국군
[군사기획] - 국군발달사
<9>호국군
시급한 예비병력 확보 위해 1948년 창설

국군이 창설됐지만 1949년 8월 6일 병역법이 제정되기까지는 지원제가 시행됐다. 지원제 하에서는 예비 병력 확보가 시급했으며, 주한미군의 철수가 시작돼 더욱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국방부가 채택한 것이 예비군인 호국군의 창설이다.

호국군은 ‘국군조직법’(법률 제9호) 제12조에 근거, 48년 11월 20일 육군총사령부(육군본부) 내에 호국군무실을 개소한 것으로 출발했다. 초대 실장으로 신응균 소령이 부임했으며, 현역 부대의 각 연대에는 호국군 고문부가 설치됐다. 세부 규정은 49년 1월 20일 공포한 ‘호국군 병역에 관한 임시조치령’(대통령령 제52호)에 따랐다.

조직 편성은 육군 정규군의 전투력 증강을 위해 전투부대·특수부대로 구분했고, 필요에 따라 정규군에도 편입할 수 있었다. 장병은 예비역 신분으로 본인 거주지에 주둔하는 연대에 소속돼 생업에 종사하며 필요한 훈련을 받았다.

호국군 장교의 임관은 일반 장교와 동일하게 특별채용·보통채용으로 이뤄졌다. 대대장급 이상은 60세, 중대장급은 50세, 소대장급은 40세까지로 연령을 제한했다. 간부후보생은 1차로 각 지역의 현역 연대에서 6주간 훈련을 받고 호국군사관학교에 입학, 다시 6주간의 교육을 이수한 뒤 소위로 임관했다.

호국군은 부대 편성에 앞서 49년 1월 7일, 육사8기 특별 제1반 졸업자(49. 1. 1 졸업) 중 선발된 4명의 여단장을 충원했다. 마침내 1월 11일 호국군 제101(서울)·102(대전)·103(부산)·106여단(청주) 등 4개 여단 10개 연대가 편성됐다. 그리고 4월 1일에는 육군본부 호군국을 육군총참모장 직할 호국군사령부로 개편, 독립 예비군화했다.

초대 사령관직은 송호성 준장이 맡았다. 사령부에는 사령관과 참모장을, 그 예하에는 군수처·교육처·정보처·인사처 등 4개 처를 뒀다. 이로써 호국군은 49년 1월부로 이미 2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4월 22일 호국군은 제105여단을 창설하고, 7월 16일에는 2개 여단(107·108) 8개 연대를 증편해 총 7개 여단 18개 연대가 됐다. 증편 과정에서 49년 3월 4일 호국군간부훈련소를 육본 직할로 이태원에 설치해 4월 1일 육군 호국군간부학교로, 다시 7월 10일 육군 호국군사관학교로 개칭, 운영하다 호국군의 해체에 앞서 8월 15일 폐교했다.

졸업생은 4개 기 1080명을 배출해 이 가운데 640명이 현역 장교로 편입됐다.49년 6월 30일 호국군사령부는 제101연대본부(용산 주둔)로 이동해 임무를 수행하던 중 병역법(법률 제41호) 시행으로 8월 31일부로 해체에 들어갔다.

일체의 인원과 장비는 육군본부 예비군국으로 인계됐고, 각 여단사령부는 해체했다. 호국군의 창설 주목적은 지원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예비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였으나 병역법 개정으로 징병제가 도입되면서 호국의 존립가치가 줄어들어 결국 해체가 결정된 것이다.


<백기인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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