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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0 08: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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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58>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6·25전쟁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59>미8군 킬러작전과 미9군단장 전사
적 재편 기회 주지 않기 위해 야심찬 공세 펴

▲리지웨이의 킬러작전

킬러((killer)작전은 미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이 1951년 2월 중공군의 4차 공세(일명 2월 공세)로 중동부 전선에 형성된 대돌파구(원주~제천~영월)를 회복하고, 그 지역 내의 공산군을 포위·격멸하기 위해 수립했다. 이 작전은 중공군 개입 이후 미8군이 중공군에 대해 군 차원에서 실시한 최초의 공세작전이다.

이제까지 미8군은 연대전투단 규모를 작전에 투입해 중공군의 진출선을 확인하는 소규모 정찰전을 전개했고, 이후에도 38선 진출을 위해 확보해야 되는 한강 진출에 필요한 작전을 군단 주도로 실시했다.

그러나 이를 주시하고 있던 중공군이 51년 2월 중동부 전선의 미10군단과 국군3군단이 홍천 및 서울~강릉간 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실시한 라운드업 작전이 끝나는 시점에 상대적으로 아군에게 취약한 이 지역에서 2월 공세를 단행, 유엔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줬다.

이때 국군8사단은 약 8000명, 국군3·5사단은 각각 3000명의 병력 손실을 입었고, 네덜란드군은 대대장(중령 오우덴)이 전사하는 불운을 겪었다. 전사에서는 수많은 유엔군이 전몰한 이곳 횡성 서북 쪽의 협곡을 ‘학살의 골짜기’로 기록하고 있다.2월 공세를 통해 횡성에서 미2사단과 국군 3개 사단에 막대한 타격을 준 중공군은 중부전선의 교통 요충지인 지평리의 미23연대를 섬멸하고자 했다.

미23연대장 프리먼 대령과 미23연대에 배속된 프랑스의 몽클라 중령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중공군 3개 사단의 포위에 굴하지 않고 발군의 지휘로 이를 격퇴했다. 중공군은 지평리에서 첫 패전의 쓴맛을 봤다. 지평리 전투를 계기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물리친 미8군은 적에게 휴식과 재편성의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야심찬 공세작전을 계획했다.

이 작전이 킬러작전이다. 이 명칭은 적 병력의 말살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리지웨이가 직접 명명했다. 하지만 이 작전 명칭에 대해 미 국방부가 ‘킬러(도살)’라는 말을 사용하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으나 그는 작전 목적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이 명칭을 끝까지 고수했다.

킬러작전에 참가하는 주공은 중동부 전선의 미9군단·미10군단이었고, 서부의 미1군단과 동부의 국군3군단은 양쪽에서 엄호임무를 맡았다. 이 작전은 51년 2월 21일 개시됐다. 이에 주공인 미9군단·10군단은 양평~횡성선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이 작전 중 2월 24일 주공 군단장인 미9군단장 무어(Moore) 소장이 정찰을 위해 탑승한 헬기가 여주 근처 한강에 추락해 전사했다. 킬러작전은 무어 장군의 전사와 겨울철 비로 기동이 제한, 중단됐다.

▲무어 장군 전사

무어(56) 장군의 전사는 두 달 전 워커 장군 전사에 이은 또하나의 비극이었다. 그는 리지웨이 장군과 육사 동기생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시 유럽전선에서 연대장·사단장을 훌륭히 수행했고, 전후에는 국방부 공보처장·육사교장을 거쳐 51년 1월 31일 부임해 3주 만에 첫 작전에서 전사했다. 그는 리지웨이가 군사령관 부임 이후 펜타곤에 건의한 4명의 군단장 후보 중 가장 유능한 장군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 육사교장에서 가장 먼저 발탁돼 군단장에 임명됐으나 능력도 채 펴기 전에 불행을 당했다. 그의 사후인 51년 10월 주한미군은 여주군 여주읍 단현리에 추모비를 세워 그의 넋을 기리고 있다. 한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진두에서 지휘하다 이국땅에서 산화한 맹장 무어 장군의 명복을 축원한다.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8.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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