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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8.10.22 13: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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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7
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국군발달사-<37>국군의 해외파병-파월영웅
[군사기획] - 국군발달사
<37>국군의 해외파병-파월영웅1
‘살신성인’ 군인정신의 표본 강재구 소령

1965년 10월 4일 월요일 오전 10시 37분, 힘과 신념으로 아람찬 스물아홉의 한 장교가 부하들의 목숨을 구하고 수류탄과 함께 일순에 산화했다. 맹호부대인 수도사단 예하 제1연대 10중대장 강재구가 그다.후일 ‘재구대대’라 불린 3대대는 그날 홍천 인근의 부대훈련장에서 수류탄 투척훈련이 계획돼 있었다.

6시 30분쯤, 24인용 텐트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던 강 대위는 인접 중대장들에게 지난 투척훈련 때의 경험을 들려주고 주의를 당부하며 훈련장으로 떠났다.그런데 바로 자신의 중대에서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훈련 도중 박해천 이등병이 던진 수류탄이 높이 치솟아 중대원 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병력 대부분이 유효반경 내에 위치해 큰 살상이 예상됐다.

지형이 평탄치 않아 손으로 받지도 발로 찰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친 강재구는 폭음과 함께 무참한 주검으로 산화했다. 평소에 강조한 ‘굵고 짧게 살자’는 말 그대로.10월 8일, 장례는 육군본부 광장에서 육군장으로 치러졌고 그는 소령으로 추서됐다. 육군의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정래혁 중장)에서는 그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짧은 일생을 책으로 엮었다.

이듬해인 1966년부터는 전군에서 선발된 모범 중대장들에게 ‘재구상’이 수여됐고, 육사 교정에는 동상이 세워졌다.강재구, 그는 보통사람처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사는 군인이었다. 월급을 타서 멀리 계신 홀어머니께 보내며 위안으로 삼았고, 2만여 원의 봉급을 아끼고 쪼개어 문병을 가고 라디오와 필드 재킷을 샀으며 화지리 대포집의 외상값을 갚았다.

사랑하는 이에게 지포리 우체국에서 편지를 썼고, 국군의 날 배식된 쇠고기국과 상사가 내린 소주와 함께 노래 부를 줄도 아는 사나이였다. 그리고 젊은이들처럼 헤밍웨이를 읽고,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의 저서 ‘까뮈’의 소설을 탐독한 갓 애기 아빠가 된 젊은 장교였다.

동기생들은 영전에 바친 조사에서, 그가 진정 헤어져야 할 설움과 밀려오는 고독을 삭이면서 타인 앞에 웃음지어 보이고, 외로움 속에서 보다 강한 삶의 힘을 찾을 줄 알며, 의미 있는 생을 정의할 줄 아는 무인이었다고 회고했다.

늙으신 노모, 천진한 어린 자식과 벅찬 생활을 영위해 가야 할 여인을 두고도, 산마루에 교통호만이 줄지어 가고 밤하늘에 별빛이 영롱한 전선에서 부하에게 웃음을 띄우며 눈길을 적진에 두고 태연한 자세로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 그리운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기념사업 책자에서 당대의 문필가인 선우휘는 ‘천성의 고결한 얼, 진실되게 살려고 애쓰며 뉘우치고 또 뉘우치면서 스스로를 닦아간 고행에 가까운 인격 도야,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한 애절한 희구, 니힐리즘에 가까우면서도 그것을 극복한 자기 확립의 정신, 하루하루의 삶에 충실함으로써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한 실존적 인생관’이 그때 그곳에서 찰나에 숭고한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라 썼다.

노산 이은상 또한 그의 동상에 “… 아라보라 삼군의 앞을 이끌어 / 지축을 박차고 내닫는 부르짖음이 / 너와 나 가슴마다에 메아리친다 …”라고 새겼다.강재구의 짧은 생애를 그리고자 세 번씩이나 고쳐 쓴 ‘별빛은 산하에 가득히’의 저자인 선우휘는 다시 ‘서시’에서 “조국의 심장에 목숨을 / 덮고 / 청춘의 연령을 / 조국의 심장으로 돌아간 / 아, 이 장렬, 강재구 소령!”이라고 기렸다.


<백기인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백기인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국방일보-200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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