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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0 09: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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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88>6·25전쟁시 美 합동참모본부의 역할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88>6·25전쟁시 美 합동참모본부의 역할
전쟁전략 통제 가능하도록 美 대통령 보좌

미 합동참모본부는 전시에는 대통령에게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전략지침에 관한 사항을 조언하고, 평시에는 미국 군사정책 및 전략을 창출하는 전략수립·군령기관으로서서 역할을 했다. 합동참모본부의 대통령에 대한 정책상의 건의는 육군부(陸軍部)나 합동참모본부 내 참모들에 의해서 특정문제를 고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6·25전쟁 당시 합동참모본부 요원은 각군에서 선발된 약 210명의 장교로 구성됐다. 이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 충분한 토의를 거쳐 최종적인 계획이 수립되면, 각군 참모총장으로 구성된 합동참모들에게 보고했고, 합동참모본부는 국방장관에게 그들의 견해를 첨부해 보고했다. 이때 정치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는 국방부와 국무부 참모들 및 각군 장관선에서 이뤄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부 부처 간 견해상의 차이가 해소된 명료한 판단과 건의안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제출됐으나, 사안의 중요성에 따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되기도 했다. 대통령의 자문기관으로서 합동참모본부는 스스로가 미국의 군사력과 정책의 모든 면을 고려했다. 합동참모본부는 6·25전쟁 시 국내 문제와 미국의 대외문제, 그리고 서부유럽의 방어와 한국 사태를 동시에 고려했다.

한국 문제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미국의 방위전략계획을 포함한 문제와 별개로 처리될 사안이 될 수 없었다. 이에 합동참모본부는 전 세계적 위기에 대응할 미국의 능력을 지나치게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한국에 얼마나 많은 군사력을 파견할 수 있을지를 고려해야 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전쟁 동안 전쟁 국면이 바뀔 때마다 이 문제를 놓고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설치된 유엔군사령부에 전략지침을 제공하고, 미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를 통해 전반적인 전쟁 전략을 통제하도록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예를 들면 합동참모본부는 중공군 개입으로 한국 전선에서의 직접적인 위협과 세계대전의 가능성이 증대되자 트루먼 대통령에게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토록 건의했다.

1950년 12월 6일부터 시행된 국가비상사태선언은 대통령에게 허용된 법령과 권한을 발동시켜 미국의 군사력 확대와 이러한 군사력 확대를 지원해 주는 산업력을 동원할 법적 근거가 됐다. 특히 합동참모본부가 수행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군의 최고 통수권자인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안보결정책임자인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에게 군사적·외교적 사안을 조언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미국의 세계전략과 대한(對韓)정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합동참모회의 구성원인 합동참모의장(브래들리)을 비롯해 육군총장(콜린스)·해군총장(셔먼)·공군총장(반덴버그)은 개전 초기에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안보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직무에 따른 정세보고와 함께 군사적 조언을 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합동참모들은 합동참모의장을 경유해 국방장관이나 각군 장관이 대통령에게 관련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나 사안의 중요성에 따라 합동참모들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직접 참석해 미국의 군사정책·전략 수립에 필요한 군사사항을 설명했다. 또 맥아더 장군의 해임 건의와 같은 통합군사령관에 대한 인사문제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수행했다.

미국의 합동참모들은 전쟁 국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중요한 군사작전이나 중공군 개입 이후 미군 철수와 같은 중요한 군사정책 등을 결정하기 전에 직접 극동군사령부나 미8군사령부를 방문해 전구사령관·참모들과 토의를 통해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을 강구해 이를 정책에 반영했다.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관>

[국방일보-200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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