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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8.10.13 08: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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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87>이승만 대통령의 38도선 폐지론과 북진통일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87>이승만 대통령의 38도선 폐지론과 북진통일
북의 불법 남침을 통일 기회로 판단

6·25전쟁 시 이승만 대통령의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염원은 북진통일이었다. 그는 북한의 불법 남침을 남북통일의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광복 후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38도선은 북한이 침범했기 때문에 이제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런 판단 아래 전쟁을 지도했다.

전쟁 초기 미국이 참전하면서 38도선 회복을 전쟁목표로 삼고 여기에 따라 행동하자, 이 대통령은 향후 남북통일에 걸림돌이 될 38도선 폐지론을 미국에 종용하게 됐다. 그는 1950년 7월 19일 트루먼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소련의 후원으로 수립된 북한 정권이 무력으로 38도선을 파괴하고 남침한 이상 38도선이 더 이상 존속할 이유가 없어졌으며, 이에 전쟁 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며 유엔군의 38도선 돌파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트루먼도 9월 1일 기자회견에서 “38도선 돌파는 유엔에 달려 있다”며 전쟁 초기 전쟁 이전 상태로의 복귀라는 최초 목표에서 38도선 돌파 및 한국통일이라는 새로운 목표로 전환하되 유엔의 테두리 내에서 이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이 대통령은 통일의 의지를 다시 한번 내외에 천명했다.

그는 9월 20일 인천상륙작전 경축대회에서 “지금 세계 각국 사람들이 38도선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으나 이것은 다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본래 우리 정부의 정책은 남북통일을 하는 데 한정될 것이요. 소련이 북한을 도와 민주정부를 침략한 것은 민주세계를 토벌하려는 것이므로 유엔군이 들어와서 공산군을 물리치며 우리와 협의해 싸우고 있다.

이에 우리가 38도선에서 정지할리도 또 정지할 수도 없다. 지금부터 이북 공산도배를 소탕하고 38도선을 압록강·두만강까지 밀고 가서 철의 장막을 쳐부술 것”을 결의했다. 그러나 9월 29일 서울 환도식이 끝난 후 이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에게 “지체없이 북진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가 “유엔이 38도선 돌파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이 대통령은 “유엔이 이 문제를 결정할 때까지 장군은 기다릴 수가 있겠지만 국군의 북진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내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국군은 북진할 것이다”고 말하고, 그날부로 정일권 육군총장에게 북진명령을 내려 국군이 38도선을 돌파케 했다.이후 한반도 통일을 지향하는 이 대통령의 북진통일은 그의 전쟁목표로 정립돼 전쟁 기간 내내 일관되게 추진됐다.

그는 이를 위해 국군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하며 미국과 유엔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에게는 오로지 남북통일만이 있었다. 따라서 북진통일에 반(反)하는 미국과 유엔, 그리고 참전 자유 우방국의 어떠한 정책과 결의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가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휴전을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다시는 통일의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전협정 후 앞으로 있을 정치회담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미 국무장관 덜레스에게 “전쟁터에서 쟁취 못한 것을 정치회담의 탁자 위에서 미국에게 양보해 주리라고 어떻게 공산당에게 기대를 걸 수가 있겠소?”라는 물음은 공산당의 책략을 꿰뚫는 발언이었다.

이렇듯 전쟁수행 과정에서 보여준 이 대통령의 북진통일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집념과 무리수는 미국과 유엔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됐을지 몰라도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로부터는 반드시 달성해야 될 전쟁목표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관>

[국방일보-200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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