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유병수(劉秉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20555
  • 전몰일자 : 51.05.22

공훈사항

유병수 일병은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고 있는 시기에 조국 통일의 선봉에 서고자 1951년 2월 중순 경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30연대에 배치되었다.
제9사단은 10월 25일 제28·제29·제30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서울에서 창설되었고, 제30연대는 충북 청주에서 창설되었다. 한편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북한군 패잔병과 지역 공산주의자들이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10월 15일 창설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고,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및 충남지구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 기간에 제30연대는 경북 상주, 영주, 문경지구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전개하여 게릴라를 소탕함으로써 후방지역이 어느 정도 안정되는 데 기여했다.
사단은 12월 19일부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에 배치되어 12월 말까지 북한군 제2군단 소속의 유격부대와 격전을 벌였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신정 공세) 때 연대는 제3군단에 배속되어, 1951년 1월 3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이다 상급부대 명에 의거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격퇴하고, 3월 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4월 들어 유엔군은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 작전을 개시했다. 이때 사단은 제1군단에 배속되어 진격했고, 연대는 4월 하순경 고성군 진부리 일대까지 진출했다. 사단은 4월 25일 제3군단에 배속 전환되었고, 연대는 인제군 매봉, 한석산 일대에 배치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펼쳤다.
중공군이 5월 16일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유 일병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자 앞장서다 속사리 부근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951년 5월 22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유병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68-ㅌ-05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