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유병수(劉炳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상
  • 군번 : 1106839
  • 전몰일자 : 51.07.14

공훈사항

유병수 이등상사는 평안북도 영변군 오리면에서 1926년 4월 7일에 출생했다. 유 이등상사는 1948년 6월 1일에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6·25전쟁 발발 당시 정동진에 상륙하려는 북한군 육전대를 격퇴하고 강릉군을 3일간 방어했다. 하지만 제8사단은 전력상의 열세에 직면하여 경상북도 일대로 철수하며 지연전을 펼쳤다.
이후 제21연대 장병들은 1950년 8월간 경상북도 의성군 및 영천군의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을 지연하여 반격과 북진의 전기를 마련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9월간 남한지역을 수복하고, 10월 말에는 평안북도 희천군까지 북진했다. 하지만 11월에 국군은 중공군의 참전에 직면하여 철수하게 되었다. 이에 제8사단 제21연대 장병들은 1950년 말 강원도 방면으로 철수하여 재정비에 돌입했다.
제21연대는 유엔군과 같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1월 25일을 기해 일제히 반격 작전을 개시했다. 1951년 2월 5일부터 횡성지구 위력수색작전을 실시하던 중 제8사단 제21연대 장병들은 1951년 2월 11일부터 강원도 횡성군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의 제4차 공세를 방어했다. 이때 제8사단은 미군 제10군단의 예하에 있었다. 국군과 미군은 강원도 홍성군에 대한 탈환을 이루지 못하고 횡성군 공근면 오산리 일대에 긴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중공군 2월 공세가 전개되어 전황은 국군에게 매우 불리했다. 특히 중공군은 제8사단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하였다.
제8사단은 전력보충 이후, 1951년 4월 3일 호남지구의 공비토벌작전을 위해 전라북도 전주시로 이동했다. 당시 전라도 일대에 지역 좌익 및 북한군 낙오병이 합세하여 공비가 약 3,000여 명에 달했다. 제21연대는 1951년 4월 16일부터 충남 경찰 소속 제18전투경찰대와 함께 충청남도 금산군 대둔산의 공비토벌에 나섰다. 토벌대는 일대의 고지를 차례로 점령해나가고 인근의 민가를 수색하며 거점을 확보했다. 이후 제8사단은 5월 19일 충청북도 제천군으로 이동하여, 미군 제10군단 제3사단의 예비대로 준비태세를 갖추는 한편 후방을 경계하게 되었다. 유 이등상사는 충청도 일대의 공비 및 북한군 잔존세력을 토벌하다 1951년 7월 14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유병수 이등상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14묘역-2판-229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ㅌ-03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