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유재호(劉在浩)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320819
  • 전몰일자 : 19501125

공훈사항

유재호 하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49년경 제3사단에 입대하여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유 하사는 1950년 3월 27일까지 향로봉, 양산, 울산 일대의 공비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사단은 6월 29일 울진지역에 투입되어 7월 1일부터 22일까지 울진, 영해, 영덕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7월 24일 제22연대가 제3사단으로 원대 복귀했고, 사단은 8월 9일까지 영덕 공방전을 전개했다. 8월 11일 적 제12사단 일부가 포항을 점령하면서 제3사단의 후방이 차단되어 고립되자, 사단은 장사동 일대로 철수하여 17일 해상철수를 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병력을 재보충받은 사단은 8월 20일 공격을 개시하여 포항 북쪽의 고지군들을 확보했다. 사단은 이 지역에서 방어와 역습을 반복하며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이때 적 제5사단도 쉽게 물러나지 않고 강력하게 저항했다. 사단은 해·공군의 폭격 지원하에 치열한 전투 끝에 18일 도하작전에 성공했고, 여세를 몰아 9월 22일 흥해까지 진격했다.
국군은 22일부터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일일 평균 17.3km의 경이적인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을 차례로 탈환하고, 30일에는 강릉을 탈환했다.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후 유 하사와 사단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했다. 사단은 25일까지 송전반도-영흥-고원-마전리-안변을 연결하는 원산 서북방의 외곽선을 확보 후 지역 내 잔적을 소탕했다.
사단은 10월 29일 북진을 계속하기 위해 함흥에 집결 후 11월 4일 신포로 이동했고, 18일 길주로 진격하여 11월 25일 백암을 확보했다. 이 진격전에서 유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진두에서 전진하다 11월 25일 적의 습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유재호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3판-7면-14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5-ㅋ-09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