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유재호(劉載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334857
  • 전몰일자 : 19500901

공훈사항

유재호 일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하빈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전인 1950년 3월 중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유재호 일병은 미원 전투에 투입되었다. 당시 상황은 매우 험난하였다. 유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7월 13일 미원 북방에서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연대정면에 집중하고 있는 북한군은 갈령, 화령장, 이화령, 조령, 죽령에서 소백산맥을 신속히 돌파하고 상주와 안동 방향으로 진출할 계획이었다. 북한군 제15사단이 괴산에서 부대정비를 마치고 16일 미명 미원 북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부흥리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유 일병과 장병들은 한때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북한군의 진출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고 저지하였다.
유재호 일병과 연대병력은 7월 21일 춘양으로 진출하려던 중 화령장의 상황이 확대되자 보은에서 화령장으로 투입되어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유 일병을 비롯한 장병들은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13일 다부동지역에 집결한 후 새로운 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하여 연대는 신주막 일대의 계획된 진지로 진출하였다. 이 무렵 북한군 제3사단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하고 북한군 제13사단은 도로를 따라 신주막으로 진출 중인 연대 정면으로 접근하면서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로써 유 일병과 연대는 방어선의 중앙돌파와 다부동이 점령당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유 일병과 연대병력은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으며 목표를 향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유재호 일병은 1950년 9월 1일 조교동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유재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1-ㅌ-04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