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유병수(劉炳壽)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93889
  • 전몰일자 : 53.07.23

공훈사항

유병수 하사는 1925년 3월 9일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분연히 일어섰다. 그는 1953년 1월 23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유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 선(임진강-연천-화천-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의 신 캔자스 선(화천-펀치볼-향로봉-간성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7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 일대에서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병행하고 있었다.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개최되었고,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진지보강을 하면서 수색정찰, 매복,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공산군 측의 개성폭격설로 인해 8월 하순 일시 중단되었던 휴전회담이 1951년 10월 25일 재개되었다. 공산군 측은 회담의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시도로 전 전선에 걸쳐 국부적인 제한공격을 취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에서 격렬한 전투 양상으로 급변했다.
사단은 1953년 2월 1일 미 제25사단과 임무교대하여 다시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후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수색정찰, 매복, 적진 교란작전 등을 지속했다. 사단은 1953년 5월 18일 제20사단에 전선을 인계하고, 미 제10군단 예비로 전환되어 현리 일대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한 후, 6월 17일 제20사단의 좌측 전선을 인수하여 백석산 전방의 938고지 일대의 주저항선 방어에 임했다. 공산군은 하계공세의 일환으로 6월 25일 중공군 제179사단이 938고지를 공격했고, 연대 장병들은 7월 1일까지 백병전을 펼치며 분전했으나 결국 이 고지를 탈환하는 데 실패했다.
사단은 7월 1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제11사단 및 제8사단의 전선 일부를 인계받아 강원 화천군 백암산 전방 금성천 변의 425고지와 406고지 전초진지 방어에 임했다. 연대는 7월 20일부터 24일까지 406고지에서 중공군 제180사단을 맞아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결국 이 고지를 적에게 내주고 휴전을 맞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유 하사는 분대원들을 이끌고 진지를 끝까지 지켜내다, 7월 23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유병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5-ㄷ-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