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유병수(兪炳琇)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51.10.16

공훈사항

유병수 순경은 1926년 6월 2일 전라북도 정읍군 이평면에서 출생했다. 유 순경은 전북경찰학교에 지원하여 초임과정을 마치고 경찰에 입문했고(경찰 입대일자 미상), 유 순경이 전북경찰국에서 치안활동에 전념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총사령부는 전국 경찰에 전투태세 돌입을 명령했고, 전북경찰국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북한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했다. 이러한 전황 속에서 유 순경은 피난민 정리 및 구호조치 등 후방지역작전에 진력했다.
북한군 제6사단이 7월16일 금강을 도하, 이리-전주로 남진했다. 경찰부대는 서해안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어 7월 19일 전주 외곽에서 북한군 제6사단 제1연대의 공격을 받고 그날 야간에 임실-남원으로 철수했다. 적은 7월 24일 순창-남원으로 기동하여 12시경 남원을 포위 공격했다. 이때 국군 민부대에 배속되어 남원 서측방에 배치된 경찰부대는 치열한 격전 끝에 적의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하동-진주로 철수했다.
경찰은 7월 31일 경남 진주에서 경남, 전남·북 경찰국 혼성병력 4,000여 명으로 전투부대를 재편성했다. 경찰부대는 미 제25사단 및 국군 해병대와 합동작전을 전개했다. 8월부터 9월까지 경찰부대는 고성·창원·함안·진동에서 북한군 제6·제7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낙동강방어선을 고수하는 데 기여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함께 유엔군이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자 미 제2사단·제25사단은 전주와 남원, 군산과 강경(30일)을 차례로 탈환했다. 도주로가 차단된 북한군 패잔병들은 지리산 일대의 산악지대로 잠입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11월 16일 중공군의 개입을 계기로 산악지역에서 공비로 활동하던 적들은 남반부 인민유격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지휘 하에 후방지역을 위협 교란하기 시작했다. 1951년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을 위한 치안명령을 시달하고, 제1차(3월 1일~4월 10일), 제2차(4월 15일~5월 25일), 제3차(7월 15일~8월 15일) 공비섬멸작전 특별기간을 설정하여 공비소탕작전에 돌입했다. 이러한 전황 속에서 공비소탕에 매진하던 유 순경은 1951년 10월 16일 무주군 설천면 일대에서 식량 탈취를 위해 나타난 공비들과 교전하던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유병수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8-ㅁ-00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