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유재호(兪在浩)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22075
  • 전몰일자 : 19510820

공훈사항

유재호 하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14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만을 익힌 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유재호 하사가 전투에 투입될 당시 북한군은 계속 남진해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고 있었다.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유재호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9월 4일 형산강 이남으로 철수한 후 인천상륙작전에 힘입어 16일부터 북쪽으로 추격해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했고, 10일 원산을 점령하였다. 이어 북한군이 11월 말 길주에서 반격해 오자, 그는 12월 14일 흥남으로 철수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17일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한편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유재호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1951년 1월 3일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한 후에도 북한군과의 치열한 교전은 계속되었다. 그와 연대병력은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이어 유 하사를 비롯한 연대 장병들은 3월 9일 속사리 부근의 지역을 위력 수색하면서 북한군을 멀리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유재호 하사와 전우들은 중공군의 제4차 공세가 시작되자, 설악산과 기리봉과 972고지를 근접전투와 치열한 백병전을 통해 점령하였다. 중공군의 제6차 공세로 설악산 부근의 사단 주저항선이 돌파되면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이어 5월 29일 간성 서북쪽 504고지를 공격해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유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1년 6월 3일부터 12일까지 향로봉지구전투를 실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을 격퇴하고 940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유 하사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하였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유재호 하사는 1951년 8월 20일 고성 부근 전투에서 치열한 백병전을 펼치던 중 북한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유재호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44판-2면-25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05-ㅋ-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