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유재한(兪在漢)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327888
  • 전몰일자 : 19500918

공훈사항

유재한 일병은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힘겹게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을 때인 1950년 8월 13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유재한 일병은 전선에 배치되어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1950년 8월 29일까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제2군단(제3,제13,제15사단)을 투입하여 대구로 집중하였으나 유 일병과 사단병력이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그들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친 북한군은 현풍-왜관-328고지-수암산-유학산-신주막 선에서 저지되었다.
유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다부동 일대의 정해진 목표를 향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고, 연일 반복되는 공방전에서 매일 평균 600여명의 손실이 발생하여 병력이 날로 감소하였다. 그 결과 사단은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 고수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수훈을 세웠다.
유재한 일병과 장병들이 방어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수차례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유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유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편성에 주력하였다.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가산(902m)은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로써 가산을 탈환하여야 하였다. 유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기병사단과 협조하여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며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유 일병은 전투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투철하였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유재한 일병은 1950년 9월 18일 팔공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유재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0판-7면-07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1-ㅅ-08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