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직래 (姜稷來)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5-4

공훈사항

강직래 경사는 1931년 3월 21일 전라북도 완주군 노양면에서 태어나 경찰에 투신하여 전라북도경찰국 전주경찰서에서 근무하였다.
1948년 10월 이후부터 여수?순천 반란군잔당과 지방공비들은 지리산, 백운산, 운장산, 덕유산 일대의 호남 동부지역과 영남 서북부지역에서 준동하고 있었으며, 특히 한국전쟁 초기에 북한군 제6사단이 전북지역과 전남지역으로 남하하고, 북한군 제4사단이 경북 서북부지역으로 남하하자 각 지역경찰서 병력은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지연전을 전개하였으나,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인하여 마침내 낙동강방어선까지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총반격작전을 개시하자 퇴로가 차단된 적 패잔병은 지방공비와 합세하여 호남지역 및 경북내륙지역에서 병참선차단, 양민학살 및 납치, 식량약탈, 방화 등 갖은 만행을 자행하였다.
강직래 경사는 완주군 동상면 일대의 북한군 패잔병토벌작전에 참가하여 북한군과 교전하다가 1951년 5월 4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순경에서 경사로 추서하였으며,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