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대근 (姜大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728162
  • 전몰일자 : 1953-7-12

공훈사항

강대근 일등중사는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본부 직할부대에서 복무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전 전선에서 국군이 철
수를 거듭하게 되자, 채병덕 총참모장은 우선 육군본부 직할 모든 재경부
대를 동원하여 의정부지구 방어에 중점을 두고 전방의 제1사단과 제6사단
및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함으로써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
한 모든 노력을 경주하였다. 따라서 6월 25일 11:00에 수도경비사령부 예
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하고 이날 오후에는 제18연대(-)도 추가로
배속하였으며, 제8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하여 가평지구로 투입하였다.
그후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
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차를 앞세운 적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6월 28일에는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한강
방어선에서 6일간을 지탱한 후 시흥-수원-평택-대전-김천 등을 거쳐
8월 초에는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국군 및 유엔군은 1951년 1월 23일을 기하여 일제히 반격작전을 개시
하여 한강 남안-횡성선에 이르렀을 때 다시 중공군의 반격에 부딪혀 지
평리, 원주 일대에서 한차례의 공방전을 치렀으나, 이를 격파하고 진격을
계속하여 1951년 3월 15일 서울을 탈환하였으며, 이의 여세를 몰아 전진
을 계속하여 3월 말에는 38도선을 또 다시 회복하였다. 이때, 유엔군은
38도선 방어에 유리한 캔자스선으로 불리는 임진강-영평천-화천 저수
지-남애리를 연결하는 요지를 점령하고, 중부지역에서는 와이오밍선으로
불리는 철원-김화로 진격을 계속하였다.
1952년도를 접어들면서 피아의 전면적 공세는 없었으나 국부적인 공격
및 유리한 전초진지 점령, 포로획득 등의 목적으로 제한된 공격은 피아
수차에 걸쳐 반복되었으며, 특히 7월과 11월에는 북한군의 인해전술로 수
차례 내습하여 왔으나 국군은 끝까지 사수하여 많은 포로를 획득하는 등
다대한 전과를 획득하였다.
그후 1953년 4월부터 휴전회담이 재개되었으며 6월 8일에 이르러서는
포로교환협정이 체결됨으로써 휴전협상의 모든 의제가 타결되었으나, 이
기간 중에도 전쟁은 계속되었고, 쌍방이 대치 상태하에서 제한된 범위의
포격전, 수색정찰전, 고지쟁탈전 등 국부적인 공방전을 되풀이하였다.
강대근 일등중사는 작전기간 중 전투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3년 7월 12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
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