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대유 (姜大裕)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36503
  • 전몰일자 : 1953-6-16

공훈사항

강대유 하사는 1924년 11월 2일 전라남도 광주시(光州市) 북구(北區)
북동(北洞)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6사단에서 복무하였다.
제6사단은 1949년 2월 22일 사령부를 강원도 원주로 이동한 후 계속해
서 38도선책임지역 경비임무를 수행하면서, 동년 8월 6일부터 8월 20일까
지 홍천 북방 신남지역에서 소양강을 건너 남침해 오는 북한군 1개 대대
규모를 포착한 후 격전(激戰)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하였다.
사단은 38도선책임지역 경비작전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군의 기습남
침으로 인하여 1950년 6월 25일부터 7월 8일까지 강원도 춘천, 홍천지구
를 방어한 후 최대한의 지연전을 전개하면서, 강원도 횡성, 원주, 충청북
도 충주로 철수하여 음성(동락리 및 무극리)지역에서 북한군 1개 연대를
섬멸시키는 대전과를 올렸다.
1950년 9월 15일부터 10월 3일까지는 낙동강방어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던 제6사단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경상북도 조림산, 의흥, 함
창, 충청북도 충주, 강원도 원주, 횡성, 춘천으로 반격작전을 실시한 후 10
월 6일 38도선을 돌파하였다.
그후 사단은 1951년 1월 1일부터 1월 5일까지 경기도 동두천에서 서울
창동, 경기도 광주, 안성으로 철수한 후 2월 14일부터 4월 6일까지 죽산,
여주, 마석우리, 가평으로 재반격작전을 실시하여 4월 20일부터 5월 23일
까지는 사창리전투와 용문산전투를 실시하여 대전과를 올렸다. 1952년 1
월 12일부터 3월 29일까지 강원도 양구에서 12주간 부대정비 및 교육훈
련을 실시한 이후 교암산, 봉화산지역으로 이동, 미 제40사단과 교대하여
1952년 3월 30일부터 1953년 7월 9일까지는 575고지 등에서 전초진지쟁
탈전을 전개하고 금성천 돌출부를 계속 방어작전임무를 수행하였다.
강대유 하사는 금성천전투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3년 6월
16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를 길이 추모하고 살신보국정신
(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번
호 37-2-137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 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