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두호 (姜斗浩)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6804471
  • 전몰일자 : 1951-5-20

공훈사항

강두호 하사는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수정동(水晶洞)에서 태어나 육군
에 입대하여 제3사단에서 복무하였다.
제3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22연대를 경기도 고양과 김포 일대
에 증원하여 북한군과 격전을 벌였다. 그후 철수하여 한강선방어임무를
수행하였다. 한편, 제23연대는 사단사령부와 함께 경상남도 부산에서 6월
29일 울진지역으로 이동하여 남하하는 북한군을 방어하였으나, 중과부적
으로 철수하였다. 그후 사단은 증강된 2개 연대와 포병 1개 대대로써 7월
19일부터 8월 1일까지 경상북도 영덕 및 강구지역에서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였다. 북한군은 포항-안강-경주-영천선을 돌파하려고 최후의 공
세를 취했으나, 제3사단은 브래들리기동부대와 민기식부대·제17연대와 수
도사단의 증원과 미 해군의 함포지원과 미 공군의 항공지원을 받아 결국
9월 19일 포항시를 탈환하였다.
그러나 9월 22일부터 총공격이 실시되어, 제3사단은 포항-흥해-청하
-영덕-울진-삼척-강릉까지 순식간에 돌파하였고, 10월 1일에는 최초
로 38도선을 돌파하고 강원도 양양으로 진격하였다. 이어 10월 10일에는
원산을 점령하고, 11월 5일까지 원산-함흥지구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11월 27일에서 30일까지 예하 제22연대는 압록강변의 혜산진까지, 제23연
대는 최북단인 나남으로 진격하였다.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에 따라, 아쉽
게도 12월 1일부터 철수를 시작하여 9일까지 흥남으로 철수한 후 제22연
대는 구룡포로, 제23연대는 부산으로 해상철수를 하였다. 그후 사단은
1951년 1월 중동부전선에 투입되어 횡성, 평창, 인제로 진격한 후 5월 16
일부터 22일까지 현리전투를 수행하였다.
강두호 하사는 현리전투에 참가하여 격전을 연속하던 중 1951년 5월
20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
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
院)에 위패번호 35-7-170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
(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