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득수 (姜得守)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40444
  • 전몰일자 : 1952-11-3

공훈사항

강득수 하사는 전라남도 고흥군(高典郡) 도화면(道化面)에서 태어나 육
군에 입대하여 제9사단에서 복무하였다.
제9사단은 1950년 10월 25일 3개 연대(대전 주둔 제28연대·공주 주둔 제
29연대·청주 주둔 제30연대)를 기간으로 서울의 청계초등학교에서 창설되
었다.
사단은 1950년 10월 30일부터 12월 18일까지 대전-대구-원주-강릉
-진부(평창)로이동하며, 제2군단으로 배속변경된 후, 서림리-현리-부
평리 간의 38도선을 방어하고 일부 병력으로 설악산-오대산 지역의 북한
군 유격부대 및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사단은 1·4후퇴시 현리-속
사리(진부)-춘양까지 철수한 후 1951년 1월 19일부터 2월 2일까지 춘양
-장성-하진부리로 진격하였다. 제9사단은 2월 12일에서 25일까지 중공
군의 2월공세로 하진부리에서 다시 철수하고, 정선-창리 선으로 이동, 방
어하다가 5월 16일부터 21일까지 현리전투에 참가하였다. 6월에는 제9사
단이 철의 삼각지대(와이오밍선)로 진출하였으며, 7월 1일부터 31일까지
김화지구를 방어하였다. 이후 포천·철원 등으로 이동하여 1951년 11월 3
일부터 1952년 4월 4일까지 281·395·396·500·343·252·358고지 등에서 고
지쟁탈전을 전개하였다. 또 4월 6일부터 9일 19일까지 사단은 300·278·
596·260·323·500·396·395고지 등에서 전초쟁탈전 및 포로획득임무를 수
행하였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0월 15일까지 제9사단은 백마고지전투를 치르고
혈전 끝에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 10월 26일 동 작전지역을 미 제3사단
에 인계하고, 사창리로 이동하여 11월 15일까지 군단예비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11월 23일부터 25일까지 제9사단은 사창리에서
저격능선지구로 이동하여, 제2사단 진지를 인수하였으며, 이후 1952년 12
월 30일까지 저격능선상의 중공군과 격전을 치렀다.
강득수 하사는 1952년 11월 3일 철원에서 중공군과
대결하여 전투임무를 수행하던 중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
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
(國立顯忠院)에 위패번호 25-6-130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
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