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래구 (姜來求)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36512
  • 전몰일자 : 1952-10-16

공훈사항

강래구 하사는 전라남도 여천군(麗川郡) 율촌면(栗村面)에서 태어나 육
군에 입대하여 제9사단 제28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9사단은 1950년 10월 25일 3개 연대(대전 주둔 제28연대·공주 주둔 제
29연대·청주 주둔 제30연대)를 기간으로 서울의 청계초등학교에서 창설되
었다.
사단은 1950년 10월 30일부터 12월 18일까지 대전-대구-원주-강릉
-진부(평창)로 이동하며 제2군단으로 배속 변경된 후, 서림리-현리-부
평리간의 38도선을 방어하고 일부 병력으로 설악산-오대산 지역의 북한
군 유격부대 및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1951년의 1·4후퇴시 현리-
속사리(진부)-춘양까지 철수한 후, 1월 19일부터 2월 2일까지 춘양-장
성-하진부리로 진격하였다. 사단은 2월 12일에서 25일까지 중공군의 2월
공세로 하진부리에서 다시 철수하고, 정선-창리 선으로 이동, 방어하다가
5월 16일부터 21일까지 현리전투에 참가하였다. 6월에는 제9사단이 철의
삼각지대(와이오밍선)로 진출하였으며, 7월 1일부터 31일까지 김화지구를
방어하였다. 이후 포천·철원 등으로 이동하여 1951년 11월 3일부터 1952
년 4월 4일까지 281·395·396·500·343·252·358고지 등에서 고지 쟁탈전을
전개하였으며, 4월 6일부터 9일 19일까지 300·278·596·260·323·500·396·
395고지 등에서 전초쟁탈전 및 포로획득임무를 수행하였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0월 15일까지 제9사단은 백마고지전투를 치르고
혈전 끝에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 10월 26일 동 작전지역을 미 제3사단
에 인계하고, 사창리로 이동하여 11월 15일까지 군단예비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국군 제9사단은 중공군 제38군 소속 3개 사단의
연속적인 공격을 받아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나, 제1포병단의 화
력지원과 UN공군의 근접항공지원하에 처절한 방어 끝에 중공군 만여명을
격멸하고, 백마고지를 확보하였다.
강래구 하사는 1952년 10월 16일 철원의 백마고지전투에서 공방전을
거듭하던 중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
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
立顯忠院)에 위패번호 37-2-138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
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