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만규 (姜萬圭)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13508
  • 전몰일자 : 1952-8-13

공훈사항

강만규 하사는 1931년 2월 16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월항면(川亘
面)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8사단 제10연대에서 근무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강릉지구전투를 담당하면서,
38도선에 배치한 제10연대를 지원하고자, 삼척에 주둔 중인 제21연대를
강릉으로 이동시켰으나 결국 서부전선과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대관령을
넘어 제천으로 철수하였다. 7월 16일 제8사단은 제2사단으로부터 제16연
대를 편입받았다. 북한군 제12사단은 태백산맥을 따라 남하하다가, 7월
30일 안동을 방어하던 국군 제8사단을 3개 방면에서 공격하였다. 국군 제
8사단은 수시간에 걸친 치열한 접전 끝에 우일선 제16연대가 많은 손실을
입으면서 진지가 돌파되었고, 안동방어의 최후방어선인 오산동 일대로 축
차적인 철수를 하였다. 제8사단은 9월 5일부터 15일까지 계속된 영천전투
를 승리로 방어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 돌파를 아슬아슬하게 막았다. 제8
사단 제10연대는 포항전투를 지원하기 위하여 제3사단 예하에 있다가 9
월 6일 육본 작명 제170호에 의거 동해안 감포에서 영천으로 이동하여,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저지하였다. 이후 사단은 9월 20일부터 10월 7일까
지 구산동-의성 -안동-영주-단양-양평 -동두천으로 진격하였으며, 10
월 8일에는 38도선을 돌파하였다. 이어 11월 7일까지 연천-철원-이천-
곡산-석봉-덕천-구장동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11월 23일에서 28일까
지 영원·맹산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 철수하게 되었고, 1951년 1월 1
일까지 신창-순천-신계-토산-연천-청량리-춘천-홍천으로 철수했
다. 이어 2월 4일까지 홍천-충주-함창-제천-횡성으로 이동하였다. 2월
5일에서 12일까지 횡성전투를 전개하였으며, 8월 9일부터 9월 18일까지는
노전평전투를 실시하였다. 9월 30일부터 10월 1일까지는 백석산전투를 전
개하여, 백석산을 점령하였다.
제8사단은 1951년 12월 2일부터 1952년 1월 31일까지 백야전사에 배속
되어 호남지구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1952년 3월 18일부터 3월
23일까지 서화리로 이동하여, 812·854고지를 미 제1해병사단으로부터 인
수하고, 9월 21일에서 22일은 동고지전투에 참여하였다.
강단규 하사는 1952년 8월 13일 854고지를 방어하던 중 장렬하게 전사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f뮈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
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