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마재 (姜馬財)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병
  • 군번 : 9902156
  • 전몰일자 : 1950-9-22

공훈사항

강마재 이등병은 부산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8사단 제10연대
에서 근무하였다.
제8사단은 1949년 6월 20일 제10연대를 기간으로 하여 강원도 강릉에
서 창설되었으며, 동년 7월 5일 제21연대(삼척 주둔)가 편입되어 이들 2개
연대로써 한국전쟁을 맞이하였다. 강릉지구에서 북한군 제5사단 및 제766
부대와 전투하다가 후퇴한 후,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6일까지 강릉-
진부리-평창-제천-안동-단양으로 이동하였다. 그후 7월 16일 제8사단
은 제2사단으로부터 제16연대를 편입받았다. 북한군 제12사단은 태백산맥
을 따라 남하하다가, 7월 30일 안동을 방어하던 국군 제8사단을 3개 방면
에서 공격하였다. 국군 제8사단은 수시간에 걸친 치열한 접전 끝에 우일
선 제16연대가 많은 손실을 입으면서 진지가 돌파되었고, 안동방어의 최
후방어선인 오산동 일대로 축차적인 철수를 하였다.
9월 5일 밤까지 계속된 영천전투에서 제16연대는 적 주력의 진출을 방
어하지 못하고 영천 외곽까지 철수하였다. 이때 사단장 이성가(李成佳) 준
장은 즉시 대전차공격대대와 제7사단 제8연대로써 역습을 실시하여 가까
스로 돌파구 확대를 막았다. 영천전투는 낙동강방어선이 돌파되느냐 사수
하느냐를 결정하는 전쟁의 분수령이 된 가장 중요한 전투였다. 특히 9월
5∼6일 대구·경주가 위협받을 무렵에 영천이 돌파되어 그 위기는 더욱 가
중되었다. 제8사단 제10연대는 이때 포항의 제3사단을 지원하다가 긴급히
영천 방면으로 복귀하여, 화급한 영천지역을 방어하는데 성공하였다. 국군
은 영천 부근에서 적 사살 3,799명, 포로 309명, 전차 5대 파괴, 장갑차 2
대, 차량 85대, 소화기 2,327정을 노획하는 대전과를 달성하였다.
강마재 이등병은 영천방어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1950년 9월 22
일 북진작전을 앞두고 보현산 쪽으로 공격하던 중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
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
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