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만기 (姜萬琪)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13039
  • 전몰일자 : 1953-3-17

공훈사항

강만기 하사는 1931년 5월 21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밀양면(密陽
面)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 기갑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수도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예하 2개 연대를 경기도 의정부지역
제7사단을 증원하기 위하여 동두천과 포천 방면에 배치하여, 북한군의 남
침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강력한 공격에 밀려
한강방어선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수도사단은 평택을 거쳐 안강-기계지역으로 이동하여 악전고투
끝에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격퇴하고, 낙동강방어선을 확보하는데 성공하
였으나, 기갑연대는 청송에서 북한군에게 큰 손실을 당하였다. 그후 사단
은 1950년 9월 중순 대반격작전에 참여하여, 10월 1일에는 양양을, 10월
10일에는 원산을 점령하고, 11월 27일에는 청진까지 진출하였다. 중공군
의 개입으로 철수하여 1951년에 향로봉전투, 간성지구전투, 월비산전투에
서 북한군에게 타격을 주었다. 특히 기갑연대는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북한군 제19사단과 4일간의 격전 끝에 월비산 진지를 탈취하였다. 그후
동년 12월 2일부터 1952년 3월 14일까지에는 호남지구(지리산·운장산·백
운산·산청·함양) 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수도사단은 1952년 7월 7일부터 10월 14일까지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를
실시하였다. 1953년 1월 1일부터 김화지구전투에서 중공군과의 치열한 전
투를 전개하였으며, 7월 13일부터 27일까지는 금성지구전투에 참여하였다.
강만기 하사는 1953년 3월 17일 김화지구전투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
하던 중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
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
(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