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만규 (姜萬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병
  • 군번 : K0183441
  • 전몰일자 : 1951-5-17

공훈사항

강만규 이등병은 1925년 3월 25일 서울시 용산구(龍山區) 효창동(孝昌
洞)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미 제8군에 배속되어 연합군지원병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8월 초순 미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예하 전투부대에 중대당
100명씩의 한국군을 배치하여, 병력보충을 하였다. 그후 UN군사령관 맥아
더 원수는 1950년 8월 15일, 미 제8군사령관에게 미 지상군의 부족병력은
한국군병력으로 보충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에 따라, 1950년 8월
16일부터 8월 20일 사이에 8,625명의 한국군 장교와 사병들이 일본 주둔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였다.
또한 한국에 있던 미 제24사단 및 제25사단·제1기병사단·제2사단 등에
도 8월 20일까지 8,300명의 한국군 신병이 보충되었다. 대부분의 한국군
신병들은 부산·대구 등지에서 가두징집되어, 8월 20일 부산 근교 구포리
(龜浦里)에 설치된 훈련소에서 5일간씩의 훈련을 받고 각 부대에 배치되
었다. 이후 1952년 7월 카투사 병력은 2만명에 달하였다.
강만규 이등병은 미 제8군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다가, 1951년 5월 17일
중공군의 제2차 춘계공세시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
훈을 기리어 1951년 5월 19일 무성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으며, 그의 살
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서
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번호 05-3-138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