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만원 (姜萬遠)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56095
  • 전몰일자 : 1952-6-5

공훈사항

강만원 하사는 전라남도 영광군(靈光郡) 백수면(白峀面)에서 태어나 육
군에 입대하여 제6사단 제2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6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강원도 춘천 정면으로 공격해온 북한
군 제2사단과 제7사단을 격퇴시키는 등 여타 지역에서 국군이 지리멸렬상
을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방어작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횡
성-원주-충주로 철수하면서도 충청북도 음성지구에서는 7월 5일에서
10일까지 동락리·무극리전투에서 북한군 1개 연대를 전멸시키는 대전과
를 올렸다. 7월 13일부터 경상북도 문경지구(조령·이화령)에서 지연전을
전개하고, 점촌-안계-군위-신녕으로 철수하여 8월 30일부터 9월 15일
까지는 신녕전투에 참여하였다. 이후 북진작전에서는 경상북도와 강원도
내륙올 거쳐 춘천을 탈환하고 10월 6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10월 20일까
지 화천-김화-금성-회양-신고산-원산-덕원-양덕-성천-순천으로
진격한 후, 적진에 낙하한 미 제187공수부대와 연결하여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순천-개천-희천-온정-고장-초산으로 파죽지세의 공격을
가함으로써, 국군 및 UN군의 최선봉부대로서 10월 26일 한·만 국경도시
인 초산을 점령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로가 차단되자, 부대는 분산되어 온갖 고난
속에 12월 12일 경기도 동두천으로 철수하였다. 1951년 1월 전선 재조정
에 따라 안성까지 철수한 후, 재반격작전을 전개하여 1951년 4월 20일∼5
월 23일까지는 사창리·용문산전투에서 대전과를 올렸다. 이후 8월 30일부
터 11월 18일까지 백암산·동대리·금성천·949고지 등에서 미주리선방어작
전임무를 수행하였다. 11월 19일부터 1952년 1월 9일까지 제6사단은 용호
동-949고지에서 미주리선방어를 하고, 이후 3월 20일까지 양구에서 부대
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이어 1952년 3월 23일부터 29일까지 교
암산-봉화산지역으로 이동하여, 동년 3월 30일부터 1953년 3월 4일까지
575고지와 A·B고지에서 전초진지쟁탈전을 전개하였다.
강만원 하사는 575고지방어작전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던 중 1952
년 6월 5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
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
(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