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명도 (姜明道)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0332344
  • 전몰일자 : 1953-2-28

공훈사항

강명도 일등병은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一현 天原郡) 입장면(笠場面)에
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3사단 제23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3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22연대를 경기도 고양과 김포 일대
에 증원하여 북한군과 격전을 벌인 후 철수하여 한강선 방어임무를 수행
하였다. 한편, 제23연대는 사단사령부와 함께 경상남도 부산에서 6월 29일
울진지역으로 이동하여 남하하는 북한군을 방어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철수하였다. 그후 사단은 증강된 2개 연대와 포병 1개 대대로써 7월 19일
부터 8월 1일까지 경상북도 영덕 및 강구지역에서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
하였다. 북한군은 포항-안강-경주-영천선을 돌파하려고 최후의 공세를
취했으나 워커 장군의 지시에 따라 브래들리기동부대와 민기식부대·제17
연대와 수도사단 및 UN해군과 공군의 지원을 받아 결국 9월 19일 제3사
단은 포항시를 탈환하였다. 9월 22일부터 제3사단은 북진을 실시, 9월 30
일까지 포항-영덕-삼척-강릉(38도선)으로 진격한 후 10월 1일 국군과
UN군에서 최초로 38도선을 기사문리에서 돌파하였다. 이어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원산을 탈환하였으며, 10월 16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원산-함
흥지구를 경비하였다. 11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제22연대는 혜산진으
로, 제23연대는 나남으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12월 1일 중공군의 대거 침공에 따라, 12월 9일까지 백암 및 나
남-길주-성진-흥남으로 철수하였다. 이어 12월 10일부터 12일까지 제
22연대는 구룡포로, 제23연대는 부산으로 해상철수하였다. 제3사단은 원
주로 이동하여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홍천 북방 소양강 일대에서 북한
군 제10사단과 제2사단의 유격대에 대한 소탕전을 전개하였다.
제3사단은 1951년 1월 7일부터 10일까지 평창-영월-제천-영주-춘
양으로 철수하였다가, 2월 4일부터 10일까지 춘양-영월-평창-횡성으로
진격하였다. 5월 16일부터 22일까지 현리전투를 실시하였으며, 10월 27일
부터 31일까지 가칠봉 전방 1052 및 1211고지를 공격하였다.
1952년 1월 7일부터 11일까지 제3사단은 제6사단의 금성천지역을 인수
하였으며, 3월 18일 백야전사령부로 배속되었다가 4월 9일 석장리-973-
949-739고지를 연하는 주저항선에 배치되었다. 제3사단은 9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748(피의 고지)·572(독수리고지)고지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1953년 1월 1일부터 4월 12일까지 제3사단은 필승·텍사스·오
봉 능선에서 전초진지쟁탈전을 전개하였다.
강명도 일등병은 필승·텍사스·오봉 능선에서 전초진지쟁탈전을 전개하
던 중인 1953년 2월 28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
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
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