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명수 (姜明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79593
  • 전몰일자 : 1953-7-16

공훈사항

강명수 하사는 1932년 4월 8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광주면(廣州面)
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6사단 사7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6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강원도 춘천 정면으로 공격해온 북한
군 제2사단과 제7사단을 격퇴시키는 등 성공적인 방어작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횡성-원주-충주로 철수하면서도 충청북도 음성지구에서는 7월 5
일에서 10일까지 동락리·무극리전투에서 북한군 1개 연대를 전멸시켰다.
7월 13일부터 경상북도 문경지구(조령·이화령)에서 지연전을 전개하고, 점
촌-안계-군위-신녕으로 철수하여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는 신녕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후 북진작전에서는 춘천을 탈환하고 10월 6일 38도
선을 돌파한 후, 10월 20일까지 화천-금성-신고산-덕원-성천-순천으
로 진격한 후, 미 제187공수부대와 연결하였다. 제6사단은 10월 21일부터
순천-개천-회천-온정-고장-초산으로 공격하여 국군 및 UN군의 최선
봉부대로서 10월 26일 한·만 국경도시인 초산을 점령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로가 차단되자, 사단은 1950년 12월 12일 경
기도 동두천을 거쳐 1951년 1월 전선 재조정에 따라 안성까지 철수한 후,
재반격작전을 전개하여 1951년 4월 20일부터 5월 23일까지는 사창리·용
문산전투에서 대전과를 올렸다. 이후 8월 30일부터 11월 18일까지 백암산
·동대리·금성천·949고지 등에서 미주리선방어작전임무를 수행하였다. 11
월 19일부터 1952년 1월 9일까지 용호동-949고지에서 미주리선 방어임
무를 수행하였다.
1952년 3월 30일부터 1953년 3월 4일까지 제6사단은 575고지와 A·B고
지에서 전초진지쟁탈전을 전개하였으며, 3월 5일부터 7월 9일까지 금성
돌출부를 계속 방어하였고, 7월 10일부터 14일까지 중공군의 최후공세를
맞아 교암산으로부터 금성천 남안으로 지연전을 전개하면서 철수하였다.
강명수 하사는 교암산에서 철수하여 금성천 남안으로 지연전임무를 수
행하던 중 1953년 7월 16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
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
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