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명현 (姜明賢)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0639093
  • 전몰일자 : 1952-4-16

공훈사항

강명현 일등병은 경상남도 부산시 영도구(影島區) 대평동(大平洞)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7사단 제8연대에서 근무하였다.
제7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1연대는 경기도 동두천지구를 제9연
대는 포천지구 정면을 맡아 분전하였으나, 북한군 제3사단과 제4사단 및
105전차여단의 집중공격을 받아 26일 밤에는 의정부가 실함될 정도로 큰
타격을 받고 있었다. 북한군은 주공을 제7사단 방면으로 지향함으로써, 정
부에서는 6월 27일 서울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이어 6월 28일에는 육
군본부와 국군이 한강방어선으로 철수하였다.
제7사단은 7월 5일 해편된 후 7월 10일 전주에서 학도병 500명을 신병
으로 보충받아 제3·9연대를 기간으로 재편성하였고, 7월 14일에는 사단을
민부대로 개칭하였다. 이후 민부대(지휘관 閔耭植 대령)는 7월 16일부터
31일까지 전주-임실-남원-운봉-함양 등지로 철수하면서 북한군 제6
사단의 호남지역으로의 우회진출을 지연시키기 위한 작전을 전개하였다.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민부대는 포항지구 전투에 참가하여 북한군 제5
사단의 진출을 저지하였다.
제7사단은 8월 20일 대구에서 제3·5·8연대와 제18야포대대로 재편성된
후 8월 29일까지 낙동강 북부지역(의흥지구)에서 방어전투에 참가하고, 9
월 4일부터 13일까지는 영천전투에 참가하였다.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이
후 제7사단은 10월 1일부터 9일까지 안동-청주-양평-포천-양문리로
이동하여, 양문리(포천)에서 38도선을 돌파하고, 10월 9일부터 16일까지
양문리 -김화-평강- 정봉리로 진격하였다.
제7사단 제8연대는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제1사단과 함께 평양의 배
후로 우회공격작전을 전개하여, 김일성대학을 점령하고 평양시내에서 잔
적소탕작전을 실시한 이후, 10월 22일까지 강동-평양-순천-개천-구장
동으로 진출하였다. 11월 1일부터 26일까지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비호산
전투 후 개천-덕천-북창-순천으로 철수하였다. 이어 1950년 12월 2일
부터 1951년 1월 8일까지 승호리-수안-시변리-연천-원주-영월선으
로 철수하였다.
1951년 1월 19일부터 2월 4일까지 제7사단은 평창-정선선에서 북한군
제9사단의 공격을 저지하였고, 2월 12일부터 4월 22일까지 영월-평창-
인제-현리지역 일대에서 전투를 하였다. 4월 22일부터 6월 12일까지 중
공군의 제1·2차 춘계공세로 인제·홍천·춘천·화천지역에서 밀고 밀리는 공
방전을 전개하였다. 8월 6일부터 9월 2일까지 618-901-883고지작전을
전개하였고,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백 석산(1,142고지) 전투를 실시하였다.
1951년 12월 25일 이후 크리스마스고지(1,090고지)쟁탈전을 전개하였으
며, 5월 22일에는 중공군의 890고지를 기습공격하여 탈취하였다.
강명현 일등병은 제7사단에서 복무하던 중, 1952년 4월 16일 중공군과
크리스마스고지 전투에서 쟁탈전을 벌이다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