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명표 (姜命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706737
  • 전몰일자 : 1951-10-17

공훈사항

강명표 하사는 1924년 4월 8일 경상북도 대구시(大邱市) 남산동(南山
洞)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6사단 제7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6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강원도 춘천 정면으로 공격해온 북한
군 제2사단과 제7사단을 격파하는 등 성공적으로 방어작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제6사단은 서부전선과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횡성-원주-충주로
철수하면서 7월 5일에서 10일까지 동락리·무극리전투에서 북한군 1개 연
대를 전멸시켰다. 7월 13일부터 경상북도 문경지구(조령·이화령)에서 지연
전을 전개하고, 점촌-안계-군위-신녕으로 철수하여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는 신녕전투에 참여하였다. 이후 북진작전에서는 경상북도와 강원
도 내륙을 거쳐 춘천을 탈환하고 10월 6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10월 20일
까지 화천-김화-금성-회양-신고산-원산-덕원-양덕-성천-순천으
로 진격한 후, 미 제187공수부대와 연결하였다. 제6사단은 10월 21일부터
순천-개천-희천-온정-고장-초산으로 공격하여 국군 및 UN군의 최선
봉부대로서 10월 26일 한·만 국경도시인 초산을 점령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로가 차단되자, 사단은 온갖 고단 속에 1950
년 12월 12일 동두천으로 철수하였고, 1951년 1월 전선 재조정에 따라 안
성까지 철수한 후, 재반격작전을 전개하여 1951년 4월 20일∼5월 23일까
지는 사창리·응문산전투에서 대전과를 올렸다. 이후 8월 30일부터 11월
18일까지 백암산·동대리·금성천·949고지 등에서 미주리선방어작전임무를
수행하였다.
강명표 하사는 미주리선방어작전임무를 수행하던 중 1951년 10월 17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
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
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