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문경 (姜文暻)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25709
  • 전몰일자 : 1950-12-29

공훈사항

강문경 하사는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삼천포면(三千浦面)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8사단 제16연대에서 근무하였다.
제16연대는 제2사단 예하로 경기도 의정부지역 제7사단을 지원하다가
후퇴한 후, 1950년 6월 29일 한강방어선이 풍전등화와 같이 위급할 때, 시
흥에서 보병학교 혼성연대로 임시편성되었다. 7월 16일 제8사단은 제10연
대와 제21연대 외에 제2사단으로부터 제16연대를 편입받았다. 북한군 제
12사단은 태백산맥을 따라 남하하다가, 7월 30일 안동을 방어하던 국군
제8사단을 3개 방면에서 공격하였다. 국군 제8사단은 수시간에 걸친 치열
한 접전 끝에 우일선 제16연대가 많은 손실을 입으면서 진지가 돌파되었
고, 안동방어의 최후방어선인 오산동 일대로 축차적인 철수를 하였다. 7월
31일 적 제12사단은 다시 전차를 선두로 맹렬한 공격을 재개하여, 제8사
단장은 접적이 경미한 제10·제21연대 순으로 철수하도록 하고, 제16연대
는 수도사단 제1연대의 엄호하에 후위로서 철수하도록 명령하였다. 8월 1
일 안동교를 폭파하는 과정에서 제16연대는 북한군 1개 연대와 접전 중이
었으므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즉 연대병력 중 장교 21명, 사병 814
명이 전사 또는 실종되는 가운데 분산 철수하였다.
9월 2일 북한군은 신녕·영천을 점령하기 위해서 최후의 발악적인 공격
을 하였다. 북한군 제15사단은 야간공격으로 국군 제8사단을 지향하여 분
전하였으나 다음날 우일선인 제16연대의 방어진지가 무너지면서 영천 북
방 기룡산(騎龍山) 일대로 제8사단은 철수하였다. 제8사단은 9월 5일부터
15일까지 제2군단 휘하에서 결국 영천전투를 승리로 방어함으로써, 낙동
강방어선 돌파를 아슬아슬하게 막았다. 이후 9월 20일부터 10월 7일까지
구산동-의성 -안동-영주-단양-양평 -동두천으로 북진의 순풍을 달고
진격하였으며, 10월 8일에는 38도선을 돌파하였다. 이어 11월 7일까지 연
천-철원-이천-곡산-석봉-덕천-구장동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11월
23일에서 28일까지 영원·맹산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 철수하게 되었
고, 1951년 1월 1일까지 신창-순천-신계-토산-연천-청량리-춘천-
홍천으로 철수했다.
강문경 하사는 중공군의 침공으로 총퇴각하던 시점인 1950년 12월 29
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
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