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문생 (姜文生)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65837
  • 전몰일자 : 1953-6-4

공훈사항

강문생 이등중사는 1928년 8월 15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묘산면
(妙山面)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5사단 제35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5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공비소탕작전과 부대정비를 하던 예하
2개 연대(전주 주둔 제15연대·광주 주둔 제20연대)를 경기도 의정부지역 제
7사단과 봉일천지역 제1사단을 지원하기 위하여 열차편으로 상경 배치하
고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강력
한 공격에 밀려 한강방어선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제5사단은 대부분의 병력이 분산되어, 7월 17일 경상남도 마산에
서 해체되었다. 북진작전이 개시되고 전황이 호전된 후 1950년 10월 8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제27연대와 제35연대, 제36연대를 기간으로 하여 제5
사단을 재창설하였다. 이어 10월 16일부터 11월 17일까지 제3군단에 배속
되어, 포항·지리산·김천·영주 등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그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 전선에서 국군과 유엔군이 철수작전으로 전환하자,
사단은 전방으로 이동하여 1950년 11월 24일부터 12월 3일까지 가평·청
평·춘천지구의 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이어 1951년 들어서는 1·4후퇴로
원주-충주-점촌-영주까지 철수한 적도 있었지만, 2월부터 미 제10군단
예하로 라운드업작전의 우일선 사단으로 홍천을 공격했으며, 4월에는 원
통리까지 진격하였다. 1951년 6월에는 원통리(캔자스선)에서 서화리로 진
격하였고, 7월 19일 작전지역을 제8사단에 인계하고 군단예비가 되어 현
리로 이동하였다. 사단은 8월 18일부터 22일까지 피의능선전투에 참가하
였으며, 8월 26일 현리로부터 양구로 이동하여 9월 4일부터 10월 14일까
지는 가칠봉전투를 수행하였다. 10월 21일 제5사단은 작전지역을 제3사단
에 인계하고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개시하였다.
1952년 1월 11일부터 7월 7일까지 동해안 거진으로 진출하고, 제11사
단과 교대하였으며, 7월 10일부터 11월 10일까지 351고지전투를 수행하
였다.
1953년 1월 29일부터 4월 10일까지 제5사단은 작전지역을 제15사단에
인계하고, 간성(수동리)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
다. 4월 10일 김화로 이동한 후, 제3사단의 작전지역을 인수하였으며, 6월
10일부터 14일까지 883고지-973고지-949고지전투를 실시하였고, 7월
14일부터 18일까지 백암산전투를 실시하였다.
강문생 이등중사는 1953년 6월 4일 김화지구전투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던 중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
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
立顯忠院)에 위패번호 42-6-193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
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