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문선 (姜文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38755
  • 전몰일자 : 1953-3-6

공훈사항

강문선 하사는 1929년 10월 2일 경상남도 합천군(陜{II郡) 대양면(大陽
面)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6사단 제2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6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강원도 춘천 정면에서 공격해온 북한
군 제2사단과 제7사단을 격파하는 등 여타 지역에서 국군이 지리멸렬상을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방어작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횡성
-원주-충주로 철수하면서도 충청북도 음성지구에서는 7월 5일에서 10
일까지 동락리·무극리전투에서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아군의 승전보를 기
록하고, 북한군 1개 연대를 전멸시켰다. 7월 13일부터 경상북도 문경지구
(조령·이화령)에서 지연전을 전개하고, 점촌-안계-군위-신녕으로 철수
하여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는 신녕전투에 참여하였다. 이후 북진작
전에서는 경상북도와 강원도 내륙을 거쳐 춘천을 탈환하고 10월 6일 38
도선을 돌파한 후, 10월 20일까지 화천-김화-금성-회양-신고산-원산
-덕원-양덕-성천-순천으로 진격한 후, 적진에 낙하한 미 제187공수부
대와 연결하여 패주하는 잔적을 소탕하였다. 제6사단은 10월 21일부터 26
일까지 순천-개천-희천-온정-고장-초산으로 파죽지세의 공격을 가함
으로써, 국군 및 UN군의 최선봉부대로서 10월 26일 한·만 국경도시인 초
산을 점령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로가 차단되자, 부대는 분산되어 온갖 고난
속에 12월 12일 경기도 동두천으로 철수하였다. 1951년 1월 전선 재조정
에 따라 안성까지 철수한 후, 재반격작전을 전개하여 1951년 4월 20일부
터 5월 23일까지는 사창리·용문산전투에서 대전과를 올렸다. 이후 8월 30
일부터 11월 18일까지 백암산·동대리·금성천·949고지 등에서 미주리선방
어작전임무를 수행하였다. 11월 19일부터 1952년 1월 9일까지 제6사단은
용호동-949고지에서 미주리선방어를 하고, 이후 3월 20일까지 양구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이어 3월 23일부터 29일까지 교암산
-봉화산지역으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과 교대하였다.
1952년 3월 30일부터 1953년 3월 4일까지 제6사단은 575고지와 A·B고
지에서 전초진지쟁탈전을 전개하였다. 이어 3월 5일부터 7월 9일까지 금
성 돌출부를 계속 방어하였으며, 7월 10일부터 14일까지 중공군의 최후공
세를 맞아 교암산으로부터 금성천 남안으로 지연전을 전개하면서 철수하
였으며, 7월 15일 제11사단이 제6사단 진지를 초월하여 반격한 후 군단예
비로 남았다.
강문선 하사는 575고지에서 전초진지쟁탈전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
1953년 3월 6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
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
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