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문수 (姜文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0697005
  • 전몰일자 : 1952-1-10

공훈사항

강문수 일등병은 1933년 2월 13일 전라북도 진안군(鎭安郡) 백운면(白
雪面)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본부 직할 제1훈련소에서 복무하
였다.
제1훈련소는 1950년 7월 11일 국일명(육) 제46호에 의거, 육군본부 직
할부대로 창설되어, 초대소장에 대령 최석이 보직되었으며, 동년 8월 14일
부로 중앙훈련소에 편입되었다. 당시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7월 말에는
금강방어선이 무너지고, 낙동강방어선에서 UN군과 국군은 북한군에 대항
하여 시간과 공간을 다투는 시점인 1950년 8월 초 최석 대령을 책임자로
하여, 대구에서 교육대라는 명칭으로 신병을 모집하여 교육훈련을 실시하
였다. 이때는 대구에서 부산으로 육군본부마저 철수를 고려할 정도의 위
기였으며, 전방의 병력소모는 극도에 달해 가장 시급한 문제가 병력보충
문제였다. 며칠 후 제1훈련소로 명칭을 바꾸고 9개 대대로 편성되었으며,
1개 대대는 2천에서 2천5백명 규모였다. 전쟁 상황이 워낙 급하여, 모든
부대는 실전훈련의 유무를 따질 겨를도 없이 신병들을 북한군의 노도와
같은 공격에 대항해 육탄으로 저지하고자, 최전방에 배치하였다. 즉 입소
신병은 7일간 교육훈련을 받게 돼 있었지만, 급할 때에는 2∼3일간의 소
총사격 훈련만 시켰고, 더 급할 때에는 사격장으로 가다가 그대로 일선에
내보내기도 하였다. 보통 제1훈련소에서 하루 500∼600명씩을 일선으로
보충했지만, 많을 때는 2,000∼3,000명을 보낸 적도 있었다. 특히 사단이나
연대를 재편하거나 신편할 때는, 보충병력이 모자라 길거리를 막고 주민
이나 피난민들 중 20∼35세까지의 청장년을 징집해 보낼 정도였다. 1950
년 10월 25일 육군중앙훈련소본부가 해체됨에 따라, 제1훈련소는 육군본
부로 예속변경되었다. 1951년 1월 22일 제1훈련소는 경상북도 대구로부
터 제주도 모슬포로 부대이동하였으며, 동년 6월 17일 대통령부대표창을
받았다. 1956년 1월 1일 국일명(육) 제33호에 의거, 제1훈련소는 해체되
었다.
강문수 일등병은 제1훈련소에 소속되었으며, 중공군과 고지쟁탈전이 치
열하던 즈음인, 1952년 1월 10일 전사하였으나 정확한 장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
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번호 26
-4-088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
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