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문여 (姜文汝)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13035
  • 전몰일자 : 1953-7-9

공훈사항

강문여 하사는 1931년 7월 16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2사단 제32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2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공비소탕작전과 부대정비를 하던 예하
2개 연대(청주 주둔 제16연대·온양 주둔 제25연대)를 경기도 의정부지역 제
7사단을 지원하기 위하여 열차편으로 상경시키고 의정부의 금오동과 백석
천으로 진출하여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강력한 공격에 밀려 한강방어선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제2사단은 대부분의 병력이 분산되어, 7월 24일 해체되었다. 북진
작전이 개시되고 전황이 호전된 후 1950년 11월 7일에서 13일까지 서울
에서 제17연대와 제31연대, 제32연대를 기간으로 하여 제2사단을 재창설
하였다. 이어 11월 7일부터 11월 20일까지 포천·평강 등지에서 공비소탕
작전을 실시하였다. 그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전선에서 국군과 유엔군이
철수작전으로 전환하자, 사단은 1950년 11월 27일 제1·제2·제3경비대대를
편입하였다.
이어 1951년 미 제10군단으로 배속변경된 후, 제2사단은 1·4후퇴로 정
평-여주-제천-점촌-예천까지 철수한 적도 있었지만, 1월 20일부터 2
월 3일까지 제8사단 제21연대의 2개 대대를 배속받아, 일월산·보현산 일
대의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사단은 2월 13일에서 14일까지 미 제10
군단으로부터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배속 변경 후, 의성으로 이동하였으며,
2월 28일부터 3월 8일까지 제5·제6·제7경비대대 및 국민방위군 독립대대
를 배속받아, 일월산 보현산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그후 4
월 28일 배속받은 경비대대 및 방위군을 배속 해체하고, 5월 2일 양평으
로 이동하여 미 제24사단 예하 제21연대의 작전지역(노네임방어선)을 인
수하며, 전선에 진출하였다. 이어 5월 15일부터 31일까지 사단은 청계산
(양평)-백운산(사창리)진격전을 전개하였다.
1952년 3월 30일 제2사단은 작전지역을 미 제40사단에 인계하고 사창
리로 이동한 후, 4월 21일부터 6월 15일까지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
시하였다. 6월 28일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작전지역을 인수 후 전선에 복
귀하였으며, 10월 14일부터 11월 24일까지 저격능선전투를 실시하였다.
11월 25일 사창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한 후, 12월
27일 철원지구(백마고지-화살머리고지)로 이동하여, 미 제3사단의 작전지
역을 인수하였다.
1953년 1월 10일 제7포병단이 제2사단에 배속되었고, 2월 8일부터 2월
20일까지 철원지구전초공방전을 전개하였다. 동년 6월 29일부터 7월 11일
까지 화살머리(281)고지전투를 실시하였다.
강문여 하사는 1953년 7월 9일 화살머리(281)고지전투에 참가하여 임무
를 수행하던 중 철원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54년 10월 15일 무성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였으며, 살신보국정
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