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문업 (姜文業)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17214
  • 전몰일자 : 1953-7-4

공훈사항

강문업 하사는 1930년 9월 28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3사단 제23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3사단은 1947년 12월 1일 창설된 제3여단이 1949년 5월 12일 사단으
로 승격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3사단 제22연대는 경기도 고양과
김포 일대에서 제1사단을 증원하여 북한군과 격전을 벌였다. 그후 철수하
여 한강선방어임무를 수행하다가, 7월 22일에야 사단에 복귀하였다. 한편,
제23연대는 사단사령부와 함께 경상남도 부산에서 6월 29일 울진지역으
로 이동하여 남하하는 북한군을 방어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철수하였다.
그후 사단은 증강된 2개 연대와 포병 1개 대대로써 7월 19일부터 8월 1
일까지 경상북도 영덕 및 강구지역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제12사단 및 제
766부대를 맞아 일진일퇴의 치열한 격전을 치르면서 남침을 저지하였다.
이어 사단은 8월 9일부터 9월 16일까지 포항지역을 방위하기 위하여 북
한군과 공방전을 거듭하였다. 북한군은 포항-안강-경주-영천선을 돌파
하려고 최후의 단말마적 공세를 취했으나 워커 장군의 지시에 따라 브래
들리기동부대와 민기식부대·제17연대와 수도사단이 지원하고 UN해군의
함포지원사격과 UN공군의 폭격 등으로 제3사단은 선전하였다. 맥아더 원
수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어도 북한군은 포항에서 완강히 버티었지만,
결국 9월 19일 제3사단은 포항시를 탈환하였다. 9월 22일부터 제3사단은
북진을 실시, 9월 30일까지 포항-흥해-청하-영덕-울진-삼척-강릉
(38도선)으로 단숨에 진격하였다. 또한 10월 1일 국군과 UN군에서 최초로
38도선을 기사문리에서 돌파하였다. 이어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원산탈
환작전을 실시하였으며, 10월 16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원산-함흥지구를
경비하였다. 11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제22연대는 혜산진으로, 제23
연대는 나남으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12월 1일 중공군의 대거 침공에 따라, 12월 9일까지 제3사단은
백암-나남-길주-성진-흥남으로 철수하였다. 이어 12월 10일부터 12일
까지 제22연대는 구룡포로, 제23연대는 부산으로 해상철수하였다. 12월
15일 제18연대가 제3사단에 예속되고, 제26연대는 수도사단으로 예속 변
경되었으며,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부터 제2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된 후
원주로 이동하였다. 이어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홍천 북방 소양강 일대
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제2사단의 유격대소탕전을 전개하였다.
1951년 1월 5일 제2군단으로부터 제3군단으로 배속 변경 후, 제3사단은
1월 7일부터 10일까지 평창-영월-제천-영주-춘양으로 철수하였다가,
2월 4일부터 10일까지 춘양-영월-평창-횡성으로 진격하였다. 5월 16일
부터 22일까지 현리전투를 실시하였으며,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가칠봉
전방 1052·1211고지를 공격하였다.
1952년 1월 7일부터 11일까지 제6사단의 금성천지역을 인수하였으며, 3
월 18일 백야전사령부로 배속되었다. 4월 9일 석장리-973-949-739고지
를 연하는 주저항선에 배치되었다. 제3사단은 9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748(피의 고지)·572(독수리고지)고지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1953년 1월 1일부터 4월 12일까지 필승·텍사스·오봉능선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그후 화천에서 부대정비를 한 후, 6월 15일 금성천
부근 제5사단·제8사단 작전지역을 일부 인수하고, 6월 25일부터 7월 3일
까지 529고지(관망산)전투를 실시하였다. 또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금성
천(여문리)부근전투를 실시하였다.
강문업 하사는 529고지(관망산)쟁탈전을 전개하던 중인 1953년 7월 4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
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
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