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병황 (姜秉惶)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Kl132287
  • 전몰일자 : 1950-12-5

공훈사항

강병황 일등병은 1928년 10월 1일 경상남도 부산시(釜山市) 동구(東區)
좌천동(佐川洞)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연합군 미 제1군단 제1기병
사단 제7연대에서 복무하였다.
미 제1기병사단은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04:00를 기하여 전 전선에
서 일제히 38도선을 돌파하여 남침을 개시하자, 동년 7월 경상북도 포항
으로 상륙, 충청북도 영동지구로 투입되어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1950년
8월 15일 유엔군사령관 명령에 의하여 한국군이 미 지상군에 보충되면서
카투사(KATUSA) 병력이 창설되었고, 이들은 우리나라 지형과 기후에 익
숙하지 못한 미군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미 제1기병사단은 영동, 김천지구전투에 참가한 후, 1950년 9월 15일까
지 적의 공격을 저지하면서 낙동강선까지 후퇴하여 방어작전을 전개하다
가,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전선으로부터 총반격
작전을 개시하자, 이 작전에 참가하였다.
특히 미 제1기병사단은 개성과 고랑포 일대의 38도선을 돌파하여 1950
년 10월 9일부터 19일까지 북한의 38도선방어부대와 평양방어부대를 격
파하고 평양역 일원을 공격하여 평양을 탈환하는데 전공을 세우고, 평안
북도지역까지 진격하였다.
그후 1950년 11월 하순부터 중공군의 개입과 더불어 단행된 공산군의
대공세로 인하여 37도선(평택-제천-삼척)까지 후퇴하였다.
강병황 일등병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철수하여 38도선 부근에서 방어작
전을 실시하던 기간 중 1950년 12월 5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기리고 후세에 교훈으
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
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