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봉주 (姜鳳柱)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10-3

공훈사항

강봉주 경사는 1925년 6월 28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남면(南面)에
서 태어나 경찰에 투신하여 전라남도경찰국 화순경찰서에서 근무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게된 국군과 경찰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용전분투하였으나 아군의 전투력열세로 인하여
철수작전을 전개한 후 1950년 7월 말에는 낙동강선까지 철수하였으며, 이
곳에서부터는 유엔군과 함께 강력한 방어작전을 실시하여 북한군의 공세
를 꺾었다.
한편, 1950년 7월 31일 경상남도 진주가 실함(失陷)되자 전라남북도경
찰과 경상남도경찰 일부는 전투편성을 한 다음 경찰전투지휘소를 경상남
도 함안군 군북에 설치하고 군과 합동으로 낙동강방어임무를 수행하였다.
그후 1950년 9월 15일 시행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더불어 아군은
낙동강전선에서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으며, 경찰은 반격작전과 더불어
수복작전으로 전환한 후, 각 지역 경찰국, 경찰서별로 복귀하여 북한군 패
잔병들에 대한 소탕작전과 귀순공작, 치안확보, 철도경비작전임무를 수행
하였다.
산중으로 입산한 공비들은 경찰관서 및 주요기관 시설의 습격, 군보급
로 차단, 식량약탈 등의 온갖 만행을 저지르자, 경찰은 경찰국, 경찰서별
로 이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실시하는 한편, 1950년 12월 이후에는 지리산
지구전투경찰대를 설치하여 군과 합동으로 이들에 대한 토벌작전을 전개
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강봉주 경사는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적과 교전 중 1951년 10월 3
일 화순군 남면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순경에서 경사로 추서하였으며, 살신보
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기리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
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