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상준 (姜相準)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305399
  • 전몰일자 : 1952-4-15

공훈사항

강상준 이등중사는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광천면(廣川面)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본부 직할부대에서 복무하였다.
육군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게되자, 북한군의 공격
을 저지하기 위하여 부족한 장비와 병력으로 용전분투하였다.
그러나 적의 우세한 병력과 화력에 의하여 전 전선에서 철수를 거듭하
게 되자, 육군본부 직할 모든 재경지역 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하여 의정
부지구에 중점을 두고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육군은 의정부, 창동, 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
적으로 방어하였으나, 아군의 전투력 열세로 인하여, 6월 28일 이후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였다.
그후 국군과 유엔군은 9월 중순 이후 작전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되자,
1950년 9월 15일 시행된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낙동강전선에서 반격작
전을 개시하여 10월 1일 38도선을 회복하는데 성공하고, 북진을 계속하여
북한의 초산, 혜산진, 청진까지 공격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하여 1950년 11월 24일 공격작전을 중단
하고 방어작전으로 전환하여 축차적으로 전면적인 철수작전을 실시한 후,
경기도 수원과 강원도 강릉선에서 재반격작전을 실시하여 1951년 3월 말
에는 38도선을 다시 회복하였다.
1951년 6월 다시 형성된 38도선 부근의 새로운 전선(임진강-연천-철원
-김화-서화-간성)에서, 피아간 대치하면서 주요지역 확보를 위한 공방
전을 수행하였다.
그후 1952년부터 휴전회담이 종료될 때까지 국지전 형태의 전초고지
쟁탈전을 수행하면서 후방지역에서는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였으며, 이에
육군본부 직할 모든 부대들도 적극적인 지원을 실시하였다.
강상준 이등중사는 전초고지쟁탈전과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던 기간 중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2년 4월 15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를 길이 추모하고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宣
揚)하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위
패번호는 07-2-050번이다. 또한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그의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