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석원 (姜錫元)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09701
  • 전몰일자 : 1951-8-25

공훈사항

강석원 하사는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오포면(五浦面)에서 태어나 육군
에 입대하여 제5사단에서 복무하였다.
제5사단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서울 서북방의 봉일천과 북방의 창동으로
진출하여 지연전을 전개 중이던 제1, 제7사단을 증원하여 지연작전을 전
개한 다음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면서 대부분의 병력이 분산되어 대구 주
둔 제27연대, 마산 주둔 제35연대, 부산 주둔 제36연대를 근간으로 10월
8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사단을 재창설한 후, 제3군단에 배속되어 10월 16
일부터 11월 17일까지 포항, 지리산, 김천, 영주 등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전개하고 서울로 이동하여 가평, 청평, 춘천지구 일대의 경비임무를 수행
하였다. 그후, 춘천-홍천-원주를 거쳐 충주-점촌-영주로 철수하여 2주
간의 부대정비를 마친 다음 영주-횡성으로 이동, 전선 복귀를 하였다.
제5사단은 미 제10군단의 우일선 사단으로 1951년 2월 5일부터 2월 7
일까지 홍천을 공격하였으나 중공군의 2월 공세로 2월 12일부터 2월 13
일까지 새말 일대로 철수한 후, 새말-주천을 거쳐 2월 21일부터 2월 28
일에 단양으로 이동하여 단양-풍기간의 보급로 경계 및 부대정비를 마치
고 3월 3일부터 3월 5일까지 미 제2사단과 교대하여 안흥-태기산(아이다
호선)을 거쳐 4월 5일부터 4월 19일 캔사스선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제5사단은 중공군의 제1차 공세로 4월 22일부터 4월 27일까지
원통리-아야리로 철수하였으나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미조리선으로 진출
하였지만 중공군의 제2차 공세로 철수하여 재편성을 실시한 후 5월 26일
부터 6월 4일에 캔사스선으로 재진출하여 미 제2사단의 작전지역을 인수
한 후 원통리에서 서화리로 진격한 다음 작전지역을 제8사단에 인계하고
군단 예비가 되어 현리로 이동하여 8월 18일부터 8월 22일까지 북한군과
치열한 피의능선전투를 치렀다.
강석원 하사는 피의능선전투에 참가한 후, 적정수집을 위한 수색·정찰
전 기간 중, 1951년 8월 25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를 길이 추모하고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
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번호 25-2-029번으로 봉
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그의 이름을 새겨 추모
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