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석철 (姜錫喆)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84975
  • 전몰일자 : 1953-7-16

공훈사항

강석철 하사는 1928년 5월 1일 충청남도 아산군(牙山郡) 인주면(仁州
面)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6사단 제19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19연대는 1949년 5월 12일에 창설된 제6사단에 예속되어 춘천-홍천
전투를 전개한 후, 7월 1일부터 7월 4일까지 횡성-원주-충주로 철수한
후 7월 13일부터 7월 15일까지 문경(조령, 이화령)전투에서 많은 전과를
올리고 신녕으로 철수하여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신녕전투에 참가
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그후 연대는 반격으로 전환하여 10월
6일 38도선상의 모진교를 거쳐 10월 8일부터 10월 20일까지 화천-김화
-금성-회양-신고산-원산-덕원-양덕-성천-순천으로 진격하여 미
제187공수연대와 연결한 후 계속 북진하여 국군 및 유엔군 중, 최선봉 부
대로서 10월 26일 한·만국경선상의 초산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0월 24
일부터 10월 29일까지 중공군의 개입으로 초산-븍창-운산-평양-성원
-수안-동두천으로 철수하여 38도선 방어에 임하였다.
제19연대는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격에 밀려 1951년 1월 1일부터 5일까
지 동두천-창동-광주-안성으로 철수하여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 격퇴하
고 캔사스선으로 진격하여 사창리·용문산전투를 거쳐 용문산-가평-춘천
-화천-백암산(어민선)으로 진격하여 수리봉-제안산간을 방어하였다. 그
후 백암산-동대리-여문리(금성천 노매드선)-949고지(미조리선)으로 진
격, 미조리선방어를 거쳐 교암산-봉화산지역으로 이동하여 575고지전투,
A·B고지전투에서 전초진지쟁탈전 전개, 금성돌출부를 계속 방어를 하다
가 중공군의 최후 공세를 맞아 교암산으로부터 금성천 남안으로 철수, 7
월 15일 제11사단 진지를 초월하여 반격 후, 군단예비로 전환되었다.
강석철 하사는 교암산전투를 치르고 수색·정찰작전 기간 중, 1953년 7
월 16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를 길이 추모하고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
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번호 38-3-051번으로 봉
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그의 이름을 새겨 추모
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